“일본인 스스로 과거사 반성하게 돕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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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인들이 과거 한국 침략을 반성하고 미래의 한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 병합(한일합방) 100년을 되돌아보는 ‘한국 병합 100년 시민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를 25일 결성한다. 100주년을 2년 앞두고 일본인들 스스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미해결 과제 청산에 나서는 것이다. 발기인 180여 명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대학교수·변호사·신문기자와 같은 오피니언 리더는 물론 학생·학원장·자영업자 등 각계 시민들이 고루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산파역을 맡은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 엄창준 교수(46·사진)는 “전후에 태어난 일본 국민에게 가해 책임은 없지만 역사를 바로 알고 피해자의 호소에 응답할 의무는 있다고 본다”라며 “일본 전국적인 모임으로 조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민간 차원의 반성 운동이 본격화하면 식민지 피해의 진상 파악과 한·일 양국 간의 진정한 화합도 기대할 수 있다.

엄 교수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지 않고 직접 일본 국민에게 과거사를 올바르게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역사 사진전과 학습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앞으로 수년 간 순회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들은 자발적으로 ‘반성과 화해를 위한 시민선언문’에 서명하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일본인 발기인들이 대거 참가해 작성한 ‘반성과 화해를 위한 시민선언문’은 1910년 8월 29일 체결된 한국 병합이 강요된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엄 교수는 “세계 인권선언과 일본헌법을 참고해 시민선언문을 만들었다”며 “일본헌법도 ‘전제주의와 종속, 압박과 편협성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시민선언문은 이를 감안해 일제가 무수한 피해자에게 정당하게 보상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대충 넘어가는 것은 일본헌법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엄 교수는 “일본의 유수 언론, 기업·대학·종교 단체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선언 채택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에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게 해서 체불 임금문제, 유골 송환 문제 등에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또 일본 정부가 식민지 피해를 조사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에 주목, ‘식민지 피해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도 요구하기로 했다.

엄 교수는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합이 모임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1981년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에 입학한 그는 92년 리쓰메이칸대로 유학해 현재 이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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