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펀드 ‘환헤지 전략’ 다시 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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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윤호(37·가명)씨는 요즘 지난해 10월 가입한 일본 주식형 펀드만 떠올리면 화가 치민다. 원금 2000만원이 반 토막 난 것은 주가가 빠졌으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환 헤지만 안 했다면 손실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펀드를 판 은행에 물어보니 환 헤지를 안 했다면 손실이 5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더라”며 “환 헤지를 권했던 은행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환율이 급하게 오르면서 해외펀드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한 환 헤지 때문에 되레 손실이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율이 너무 급히 오르다 보니 환 헤지를 해도 환손실을 보는가 하면, 환차익을 얻을 기회를 날리기도 한다.

최근엔 환 헤지를 하지 않고 아예 환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해외펀드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도 환 헤지를 하지 않는 신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이민홍 대리는 “환율이 오른 만큼 부족분을 토해내면서까지 환 헤지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며 “예전처럼 환 헤지를 권하는 창구 직원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환 헤지 안 하는 게 이득”=최근까지 해외펀드 가입 때는 대부분 환 헤지 계약을 맺었다. 환율 위험을 줄여준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환율이 너무 빨리 오르다 보니 되레 환 헤지를 한 쪽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문제가 된 게 정해진 금액에 달러를 사는 방식으로 환위험을 줄이도록 설계한 선물환 계약 해외펀드들이다. 주로 해외 운용사들이 판 역외펀드는 대부분 투자금 전액에 대해 1~2년짜리 선물환 계약을 했다. 그러나 이는 계약한 환율보다 환율이 크게 오르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예컨대 투자금 1만 달러를 원-달러 1000원에 선물환 계약을 했다고 치자. 펀드가 손실이 나 원금이 반 토막 나고, 환율은 1400원으로 올랐다면 펀드에는 5000달러밖에 없게 된다. 투자금 전체에 환 헤지 계약을 했기 때문에 모자라는 5000달러만큼 달러를 사서 정산해야 한다. 그것도 시세인 달러당 1400원에 사야 한다. 결국 환차손만 200만원(400원X5000달러)을 보게 되는 셈이다.

◆환율 급변 땐 적립식이 유리=그러나 투자자들의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민주영 수석연구원은 “요즘은 환 헤지를 안 한 펀드를 찾는 투자자가 많다”며 “그러나 대부분 상품이 환 헤지를 해놓고 있어 투자자의 선택 폭이 넓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환 헤지를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신한BNP 관계자는 “요즘처럼 원화가치가 크게 떨어졌을 때는 환 헤지를 하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며 “무조건 환 헤지를 안 하는 게 유리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환 헤지를 안 한 상품을 찾는 투자자들이 부쩍 늘었다” 고 말했다.

환 헤지를 할지 안 할지 고민될 때는 적립식 투자도 좋은 방법이다. 삼성증권 조완제 연구원은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환율이 떨어졌을 때 더 많은 외국 통화를 사게 돼 장기적으로 환율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며 “적립식으로 투자한다면 굳이 환 헤지 계약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안혜리·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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