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중범죄자 규명” 유전자 수집 관련 법안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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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유전자감식실은 지난달 경찰의 의뢰로 전남 목포 영산강 하구에서 발견된 20대 여성 변사체의 대퇴부뼈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감식 결과 이 여성은 8월 군산에서 여중생(15)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김모(33)씨의 동거녀 정모(29)씨로 확인됐다. 김씨의 추가 범행이 유전자감식으로 입증된 것이다.

경찰은 김씨로부터 지난 1월 정씨를 살해한 뒤 영산강 하구 나불도선착장에 버렸다는 자백도 받았다. 이승환 대검 유전자감식실장은 “자백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수사 선진국은 피 한 방울과 같은 범죄현장 유류품에서 DNA를 채취한 뒤 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조기에 용의자를 특정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영국·일본 등이 수만~600여 만 건에 이르는 범죄자 유전자DB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경시청은 범죄자 2만여 명의 유전자 정보만으로 1791건의 여죄를 밝혀내고 263건의 미제사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대검찰청은 14일 살인·방화·유괴·성폭행 등 11개 중범죄자들의 유전자를 수집해 활용하는 ‘유전자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대검 관계자는 “이번 법안은 17대 국회에 상정된 ‘유전자감식정보 수집법안’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던 점을 감안해 인권보호 장치를 명문화했다”고 말했다.

법안에 따르면 유전자정보의 수집 대상은 11개 중범죄를 저지른 뒤 구속된 피의자나 형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수형자다. 구속 피의자의 유전자는 초동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청이 관리하고, 대검찰청은 수형자DB를 운영하기로 했다. 17대 법안과 달리 구속 피의자뿐 아니라 수형자 모두 법원의 유전자 압수영장을 발부받아서만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대상 범죄에서 ‘절도죄’와 ‘강도 예비음모죄’는 제외됐다.

법안은 또 유전자정보 보호장치로 신원확인에 필요한 개인식별정보 외에 인종·성별·외모·질병 등의 유전자정보는 DB에 포함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또 수집한 정보는 법원의 무죄 판결이나 면소, 공소기각 등의 사유가 발생할 경우 삭제하도록 폐기절차도 마련했다.

검찰과 경찰은 보안을 위해 개별 유전자신원정보를 암호화해 보관해야 하며 해당자의 신원도 익명으로 숫자를 부여해 관리하도록 했다. 수사에 필요한 신원확인 이외의 목적으로 유전자 DB상의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할 경우에는 최고 7년형에 처하도록 처벌조항도 도입했다. 법무부는 유전자 법안에 대해 관계부처의 의견을 물은 뒤 이르면 이달 중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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