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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소동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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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동당 창당 63돌 기념일인 10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고지도자의 현장지도가 정권유지에 큰 역할을 하는 북한 체제에서는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김 위원장의 행동을 관측하는 ‘김정일 분석가’들이 곳곳에서 활동한다. 개인 사무실을 차려놓고 김 위원장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외무성이나 법무성 공안 관계자들에게 제공하는 사설 기관들이 즐비하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서 아예 상주하면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고, 후계자로 거론되는 장남 김정남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동남아·유럽을 돌면서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일본 정보당국은 증권가 사설 정보지(속칭 찌라시) 수준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도 모아 진위 파악에 활용한다. 미국이나 중국 정보당국에서 얻는 정보와 대조해 일치하면 대북 정책에 큰 도움이 된다.

일부 김정일 분석가들은 2000년대 초에 비해 현재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많이 변했다는 점을 들어 그가 이미 사망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들은 ‘가게무샤(대역)’ 서너 명이 김 위원장 행세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김 위원장이 4년 전 사망했다고 단언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에 대해 온갖 첩보와 소문·풍문들이 떠돌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것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정일 뇌졸중설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김 위원장이 뇌수술을 받고 스스로 양치질을 하는 정도까지 회복됐다는 정보를 내놓았지만 확인할 방법도, 증거도 없기 때문에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런 김 위원장이 11일 군부대를 시찰한 사진이 느닷없이 조선중앙통신에 의해 공개됐지만 이것 역시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김정일 소동’을 지켜보면서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김 위원장 소동이 예고 없이 찾아온 것처럼 북한의 비상사태도 갑자기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내년이면 20주년이 되는 독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그랬다. 물론 베를린 장벽이 그날 느닷없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서독과 동독이 대화를 거듭하고 동독 주민의 민주화 요구가 뜨거웠고 국제사회의 협력도 있어서 가능했다. 이런 노력이 켜켜이 쌓이면서 건국 40주년 기념 행사를 계기로 동독은 무너졌다. 건국 기념 음악회에서 음악인들이 반정부 선언문을 낭독한 것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면서 시위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989년 11월 9일 동서 장벽이 무너졌다.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런 일이 한반도에도 갑자기 벌어질 수 있다. 남한이 미국과 중국의 협조를 얻어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 오는 경제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그런 대비는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한의 현실이다. 결국 통일은 비용의 문제와 직결된다. 독일의 경험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엊그제 같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벌써 20년이 다 돼가고 있지만 독일은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동독 지역의 높은 실업률과 문화적 차이는 사회 불안의 원인이라고 한다. 말투부터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어느 쪽 출신인지 바로 알 만큼 묘한 지역감정도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독일 사례를 연구하면서 남북통일 이후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 비상사태에 대비해 주한 일본인의 소개작전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난민 대비책도 점검하고 있다. 동독 붕괴 당시에도 약 2%의 인구가 유럽의 주변국으로 흘러들었다. 한국에선 김정일 소동의 초점이 지금도 쓰러졌느냐, 건강하냐에만 맞춰져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유고 사태는 북한 정세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외교안보 차원의 대비책 못지않게 경제 격차, 문화적 차이 등 쓰나미(지진해일)처럼 몰려올 통일 충격을 지금부터 대비하는 것이 비 오는 날 우산을 준비하는 길이다.

김동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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