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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종살리기>천연기념물 논산 오골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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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대전에서 논산 시내로 향하는 국도변에 위치한 충남논산시연산면화악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우뚝 솟은 수백년된 느티나무 3~4그루와 기와를 얹은 정자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한적한 농가촌.
예부터 성스러운 곳으로 알려진 계룡산(鷄龍山)자락에 안겨 있는 이 마을에서 희귀한 닭 오골계(烏骨鷄)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흔히 오골계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98가구 3백71명의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벼슬과 깃털,눈동자는 물론 뼈까지도 온통 검은색을 띠고 있는오골계는 계룡산의 물과 흙을 먹고 자라야 「진짜」 오골계라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주장이다.
80년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지정돼 본격적인 보호를 받기까지는 전주 이(李)씨 집성촌인 이곳 사람들의 오랜 노력이 숨어있다. 특히 이 마을의 오골계 보존사업 대장격인 이내진(李來璡.73)씨 일가는 5대째 오골계 혈통보존 역할을 직접 맡아 오골계를 보호.육성하고 있는 오골계 대부 집안으로 통한다.
李씨 집안에서 오골계 보호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은 급작스레 병을 얻은 조선왕조 철종이 李씨의 고조부가 진상한 이곳 오골계덕분에 씻은듯 병이 나은 것이 직접적인 계기.
이때부터 李씨 집안 사람들은 대물림하면서 고집스럽게 오골계를지켜왔다.
李씨 자신도 6.25전쟁이 한창일 때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오골계를 안고 계룡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오골계를 애지중지 길러내 위기를 넘기곤 했다.특히 78년 오골계 전염병이 이 일대에 크게 퍼졌을 때 李씨는 오골계를 안고 계룡산으 로 피신,겨우 8마리를 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대를 이어 보존해온 오골계의 순수 혈통유지를 위해 李씨집안 사람들은 일반 닭이나 「잡종」 오골계와 철저하게 격리해길러왔다.이렇게 해서 지금은 숫자가 2천여마리로 불어났지만 李씨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낯선 사람이 보이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약간만 들려도 모이를 먹지 않는데다 전염병에 약하고 번식률마저 낮아 조심스럽게 기르지 않으면 혈통보존이 불가능하다고 李씨는 양육의 어려움을 소개했다. 10여년전부터 오골계가 각종 질환에 효과가 크다는 소문이 나면서 환자및 그 가족들이 이곳으로 찾아들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에게 한두마리씩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결국 「오골계 식당」까지 하게 됐다고 李씨는 멋쩍게 말한다.
『순수한 혈통을 가진 5백마리를 보존하는 것 외에는 처분이 가능하지만 오골계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여전히 쑥스럽습니다.
』 낮은 번식률이나 비싼 사육비를 감안하면 큰며느리에게 맡긴 식당 운영으로 큰 이익을 얻는 것 같지는 않다는게 마을 주민들의 귀띔이다.
양계장 닭은 1년이면 3백개 가량의 알을 낳지만 오골계는 1년에 1백개 이상 낳는 경우가 드물고 이마저 부화율이 70%에불과하다는 것.
또 양계장 닭은 두달이면 알을 낳는데 비해 오골계는 6개월 자라야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李씨는 계사(鷄舍)를 새로 짓는 일에 온통 신경을 쏟고 있다.
『82년 지은 계사가 오래돼 전염병이 돌 우려도 있고 해서 서두르고 있습니다.문화재관리국의 지원금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지급이 늦춰져 우선 제 돈으로 40평짜리 한 동(棟)을 지었습니다.』 李씨는 자신이 기르는 오골계를 농촌진흥청이나 인근 충남대 농대에 분양할 계획이다.
李씨는 『3곳으로 나눠 놓으면 전염병이 돌더라도 어느 한쪽은살아남게 돼 오골계 혈통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곳을찾아 현장 실습하는 젊은 학생들이 오골계 보존에 관심을 가져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논산=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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