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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넘어 생명농업 산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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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쌀 생산량은 약 450만t. 소비량은 350만t으로 연간 100만t이 재고로 쌓이고 있다. 정부는 재고용 쌀의 가공기술 개발에 서두르고 있을 정도로 쌀은 남아돈다.

하지만 봄에 쌀이 떨어져 산야초로 연명했던 보릿고개가 불과 50여년전이다. 전설이 된 보릿고개를 이기는데 각 지역의 농업연구기관들이 큰 역할을 했다.지방 농업연구기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경남도농업기술원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경남농업기술원은 대한제국 말기였던 1908년 3월 종묘장 관련제도가 공포되면서 진주에 세워진 종묘장이 모태다. 당시 대한제국은 지방에 맞는 농사법 개발을 위해 진주와 함흥 등 두곳에만 시범적으로 종묘장을 세웠었다.

백수를 맞는 경남도농업기술원은 지난 9일 100주년 기념식을 가진뒤 11일까지 ‘희망 100년 친환경농업축전’을 열었다.

◆일제의 수탈농업 기관으로 출발=진주시 상봉동 현 진주여고 주변에 세워진 진주종묘장은 2년만인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일제의 수탈농업 기관으로 전락한다.

일제가 식량과 공업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쌀, 면화, 누에, 소 등의 증산에 앞장서게 되는 것이다. 일제는 관제조합을 만들어 강압적인 농사개량사업을 펼친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의 원조를 받아 농사기술 지도에 체계적으로 나선다. 56년 한·미 양국정부가 ‘농사 교도(敎導)사업 발전 협정’을 맺고 각 도별로 농사원을 세움에 따라 57년 말 경남도농사원으로 바뀐다.

현실에 맞는 식량증산과 농촌 부녀자들에 대한 생활개선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농촌생활개선사업은 부엌개량과 청소년 학습지원 등으로 열악한 농촌환경을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

62년 경남도농촌진흥원으로 바뀐 뒤 도청의 부산이전에 따라 부산시 중앙동으로 옮겼다가 82년 현 위치인 진주시 초전동으로 이전해 온다. 98년 경남도농업기술원으로 바뀐다.

◆보릿고개를 넘어 생명농업으로=60, 70년대에는 다수확 품종 재배기술 보급에 주력했다. 80, 90년대 들어 부직포 못자리와 어린모 재배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던 부직포 못자리는 보온 못자리에 사용하던 비닐대신에 부직포를 사용한 것으로 간편하고 실용적이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보온못자리는 논에 볍씨를 바로 키우던 물 못자리 대신에 비닐을 씌운 못자리서 35∼40일 키운 뒤 논에 심는 기술. 튼튼하고 병해충에 강한 모를 생산하는 농사기술이었다. 하지만 비닐을 씌우기 위한 골재를 설치해야 하고 해마다 비닐을 갈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부직포 못자리는 이러한 불편을 개선한 기술이었다.

80년대 말에는 8일만에 논에 심는 어린 모 재배법을 개발한다. 어린 모는 35∼40일 키우던 어린모 기간을 8일로 단축한 것으로 수확시기를 앞당기는 획기적인 농사기술이었다.

90년대 들어 새송이 버섯을 개발해 농가소득 사업을 지원하고 벤처농업을 위한 기술보급에도 앞장선다. 최근들어 친환경농법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김상진 기자



송근우 농업기술원장 “우리 농업기술 100년 설계 절실한 시대”

 “우리 농업기술이 이만큼 발전했다는 자부심보다 앞으로 100년에 대한 설계와 각오가 절실한 때입니다.”

100주년 기념 행사를 마친 송근우(56)경남도농업기술원장의 다짐이다. 그는 쌀 농사 전문가다. 경상대 농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경남도 농촌진흥원에서 주로 수도작 연구에만 매달려 왔다. 보릿고개를 이기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농업의 진로에 대해 “농업인들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도시민들에게는 농업에 대한 친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절실한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서 100주년 행사의 이름을 ‘희망 100년, 친환경생명축전’으로 정했다.

식량증산에 매달려 왔던 농법을 친환경적으로 바꾸어 농업인과 도시 소비자들이 함께 공생하는 방법을 찾자는 뜻이다. 이번 행사를 친환경 농법 심포지엄 중심으로 하는 이유다.

그는 잠시 함양약초시험장장과 원예과장을 지낸 것을 빼고는 쌀 농사만 연구해 왔다.

박사학위 논문도 기존 농법과 논을 갈지 않고 볍씨를 파종할 경우 농법의 차이를 연구한 ‘벼 맥후작 직파재배와 재배양식간의 물질생산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는 “농업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미래산업임을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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