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음악 심포지엄 팀 페이지의 강연 요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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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5일 오후2시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21세기 음악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작곡가협회(회장 김용진)주최 국제음악심포지엄이 열렸다.이날 연사로 참석한 미국 음악평론가 팀 페이지의 논문 『21세기를 맞는 음악과 음악비평』 을 요약해 싣는다.20년 가까이 미국 음악계의 현장을 지켜온 그의 체험담은 비평부재의 한국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편집자註] 오늘날 음악의 상황은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지난20년간 음악에서 나타난 이런 상황은 적어도 21세기초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60년대말과 70년대초 대학의 지원을 받던 음렬음악과 불확정성음악이 지배하는 범세계적인 모더니즘은 종말을 고했다.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가.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이 집요하게 반복되는 패턴으로 큰 볼륨을 몰아치며 나타났다.말러와 슈트라 우스로 돌아가는 신낭만주의자들도 있었다.동유럽.남미.스칸디나비아.아시아등지역성이 분명한 음악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오늘날 작곡가는 작품의 아이디어는 물론 음악언어까지 선택한다.음악애호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음악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점이다. 무정부 상태같은 상황이 역사적 연속성이라는 전통적 개념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얼마나 많은 과거의 작곡가들이 역사적 시대정신과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잊혀졌는가.진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무 시당했는가. 작곡가의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되는 지금이 음악평론가가되기에 멋진 시기다.이 신나는 혼돈의 시대에 음악평론가의 임무는 무엇인가.
미국의 음악평론가 버질 톰슨은 50년전 음악평론가의 조건 두가지를 제시했다.음악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고 글도 쓸줄 알아야 한다.작가들은 음악경험이 부족한 반면 음악가가 쓴 글은 재미없다.음악가들은 전문지식이 중요하다지만 편집장은 글 잘 쓰는사람을 평론가로 고용할 것이다.
모범적인 평론가라면 스탠더드 레퍼토리의 연주 못지않게 현대음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문학평론가가 셰익스피어만 놓고 비평할 수는 없다.현재 뉴욕타임스만 대부분의 공연평을 싣고 있다.
그래서 평론가에게 새로운 제약이 생겨났다.한 평론 가의 의견이연주의 성패에 관한 유일한 공개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화.책.연극.대중음악에 대한 난도질같은 비평이 클래식 음악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상업적이고 선정적인 영화.소설과 작은 연주회장의 겁많은 젊은 음악도를 평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젊고 유망한 연주자의 경력을 망치려고 신경을 곤두세 우며 엉터리 연주를 기대하고 연주회장에 가는 평론가는 없다.
재능있는 신인을 발견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다.혹평을 쓰더라도 가능한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한다.갓 데뷔한 신인 테너의 무대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더 신랄한 평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신인에게는 후원과 격려가 필요하다.자 선은 평론가에게도 훌륭한 덕목이다.
그렇다고 판단력을 상실한 비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저널리스트는 사실을 전달하고 무능력을 고발할 의무가 있다.그러나 평론의 영향력 때문에 표현을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한다.젊은 음악가의 용기를 꺾을 필요는 없다.연주회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지 않게 전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조 존스는 어젯밤 모차르트를 연주했다.그러나 모차르트는 그곳에 없었다』는 식의 건방진 평론은 가장 쓰기 쉽지만 모욕행위는 평론이 아니다.정말 어려운 것은 감동적인 연주에 대해 무언가 진지한 글을 써야 할 때다.
훌륭한 평론가는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갖는 만능선수다.뉴욕타임스에 근무할 때 모차르트 실내악연주회와 컴퓨터음악회.튜바독주회를 하루만에 들은 적도 있다.추모기사도 써야 하고 카네기홀에출연하는 음악가에 대한 특집기사,음악가협회의 동 정,다음 시즌의 프리뷰를 비롯해 엄청난 양의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평론가가 연주회의 첫 몇분 동안만 참석하고 일류 레스토랑에서 멋진 오페라 여주인공과 밤늦도록 떠들다 완벽한방음장치가 된 방에서 사색에 잠기는 줄 알고 있다.마침내 단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순간의 영감으로 글을 완 성해 고급승용차를 타고 신문사로 향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귀가를 서두르는 전철.택시 안에서서류봉투 뒷면에 휘갈기거나 막바로 컴퓨터로 달려가기도 한다.비행기 안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로 글을 불러줘야 하기 때문에 멀미용 종이백에도 쓴 적이 있다.5분만에 글을 완성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끔찍한 일이지만 여러번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자신감도붙게된다.
다음날 오전 그 글이 나가야 하면 음악회 종료 1시간 전에 연주회장을 떠난다.연주회의 처음 몇분 동안 얼마나 많은 정보가제공되는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다.아침에 일어나보면 그 글이 우리집 문 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음악인들의 모임을 피하려고 한다.나는 음악계에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친구는 거의 없다.건방지게 보이겠지만 아무렇게나 넘어선 안되는 중요한 경계선을 인식하자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작품에 대해 객 관적인 글을기대하기 어렵다.
[정리=이장직 음악전문기자]***미국 음악평론가 팀 페이지 약력*** ▶42세▶현재 워싱턴포스트 수석음악평론가▶맨해튼.줄리아드음대에서 음악비평 강의▶매네스음대에서피아노.작곡 전공▶79~82년 소호 위클리 뉴스,82~87년 뉴욕타임스,87~95년 뉴스데이 음악평론가겸 기자▶저서 『버질톰슨의 음악 저널리즘』『음악의 행로:음악평론집 79~82』『글렌 굴드』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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