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20일간의 몰아치기 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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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6일부터 18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되었지만 그 풍경은 지난 국회와 다르지 않다. 좁은 감사장 안에 기자들과 신문·방송 카메라들이 빼곡이 벽면에 들어차고, 착석한 의원들 앞에는 채 풀지도 않은 거대한 국감자료 보따리들이 놓여있다. 그 거대한 보따리는 보기에 난감하다.

단 20일 동안 국회의장을 제외한 298명의 의원들이 약 500개에 달하는 모든 정부 부처들과 산하기관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한다. 상임위로 따지면 의원 1인당 약 15~16개 기관을 감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의원 1명이 20일 동안 정부가 제출한 그 어마어마한 자료 보따리 15~16개를 살피고 분석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매년 국정감사에 제출되는 자료의 복사와 제본에만 42억여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298명의 수퍼맨 집단이 아닌 다음에야 국정감사가 ‘수박 겉핥기’ 감사에 그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기이할 일이다. 준비 부족에 따른 부실한 질의나 중복된 질의가 다반사이고, 의원 한 명당 7분으로 한정된 시간은 ‘일괄 질문 일괄 답변’ 방식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아예 증인에게 답변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일방적 훈계나 일갈, 그리고 호통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거기에 카메라를 의식한 돌출발언에 당리당략의 ‘정치성’ 질의까지 뒤섞이다 보면 정작 국정과 민생은 종적이 묘연해진다.

현재 지적되는 국정감사의 문제점과 비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중 상시 국정감사’ 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 현행 국정감사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에 과도하고 불필요한 자료의 중복적이고 무차별적 요구가 있다. 이에 따라 ‘20일간의 행정 마비’ 현상도 일어나는데 상시 국정감사가 이루어지면 이는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일간의 집중 감사로 인해 이슈가 한꺼번에 제기됨으로써 많은 주요 이슈가 언론의 관심 밖에서 묻혀버리는 부정적 현상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정기국회 국정감사는 과거 상시 국회가 아니었을 때의 제도다. 지금의 국회는 사실상의 상시 국회이므로 이제는 굳이 정기국회 기간에 한정하여 국정감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정기국회 개회 전 여러 차례의 임시국회 기간을 이용, 상임위원회별로 국정감사를 분산 실시한다면 정기국회 때는 본격적인 입법활동과 예산심의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상임위원회 중심의 감사를 미국식 ‘소위원회’로 세분화하고, 이 소위원회들이 연중 활동한다면 질의와 답변 시간도 늘릴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일괄 질의 일괄 답변’의 현행 국정감사 운영방식을 ‘일문일답’의 방식으로 바꿀 수 있게 되어 깊이있는 감사가 가능할 것이다. 또 일문일답 방식의 감사를 해당 국무위원이나 기관장 외에도 주무 실·국장이 직접 답변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감사의 내실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의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형식상의 감사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서는 감사에 관한 한 국회보다 전문성을 갖춘 감사원과 연계해 국정감사 지원체계를 수립하는 것도 현실적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분야별 외부전문가를 초빙, 예비감사를 통해 사전에 문제점을 발굴하고 대안 제시를 연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내년 10월에는 연례행사처럼 국정감사장을 보여주는 뉴스 화면에서 그 거대한 자료 보따리들을 보지 않게 되기를 희망한다. 대신 상식적인 분량의 자료를 어지럽게 펼쳐놓고 진지하고 집요하게 추궁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기 희망한다. 자료 보따리가 사라져야 국회가 산다. 필자는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국감의 개선이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김상회 국민대 정외과 교수

[이슈] 2008 국정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