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닮은 휴머노이드에 미래 건 자동차 회사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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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20면

지난해 12월 도요타의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바이올린 연주 로봇이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다. 키 1m52㎝에 몸무게 56㎏인 이 로봇은 이 회사가 만든 휴머노이드 ‘트럼펫 연주하는 로봇’이 등장한 지 3년 만에 나왔다. 블룸버그 뉴스

기자가 혼다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봄이다. 도쿄 혼다 본사를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자를 안내했던 것은 홍보실 직원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였다. ‘김상, 곤니치와(안녕하세요)’를 말하며 접견실로 안내하는 아시모의 뒤를 따라가며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기술의 혼다가 이런 거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지난해 12월 도요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봇을 선보였다. 양쪽 팔과 양손에 17개의 관절이 내장돼 사람처럼 섬세한 연주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하는 연주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일본 혼다-도요타 로봇개발팀

이처럼 자동차업체들이 로봇 개발에 주력하는 것은 로봇 시장의 잠재적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서다. 의료나 복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차세대 로봇 시장은 아직까지는 ‘0’이다. 하지만 미래학자들은 2030년에는 약 85조원(6조2000억 엔)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혼다 사장은 ‘아시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시모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분신이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용 로봇이 아니다. 아시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화상인식이나 인공지능 기술은 자동차 개발에 직접 연결된다. 컴퓨터 발전에 터잡은 아시모 기술은 연료전지 자동차가 대중화되는 것보다 더 빨리 소비자를 찾아갈 수도 있다.”

키 1m20에 몸무게 45㎏ 전후인 아시모는 통상 2년에 한 번 진화한다. 지난해 말엔 음식을 나르고 스스로 충전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신형 아시모는 복도 곳곳에 IC 통신카드가 내는 전파를 감지해 사람과 사람의 움직임을 식별하고 안내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걷는 속도도 시속 6㎞로 향상됐다.

또 음식을 실은 수레를 밀며 나를 수 있다. 머리 부분의 카메라와 손목의 감지기를 사용해 균형을 잡기 때문에 접시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아시모는 상반신을 굽히거나 비틀어 균형을 잡으며 인간처럼 걸을 수 있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스스로 피해갈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지각력이다. 종이컵이나 유리컵을 적당한 악력으로 잡는 기술이 어렵다고 한다.

혼다는 로봇 개발에 매년 20억 엔(약 280억원) 정도를 쓰고 있다. 히로세 마사토(廣瀨眞人·52) 아시모 연구개발 총괄은 “인간의 걷는 능력은 신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대단한 기능이다. 로봇이 걸을 때 균형을 잡는 것이 무척 어렵다. 아직은 아시모가 시속 6㎞에 불과하지만 수년 내 달리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히로세 총괄은 22년째 아시모 연구를 해 온 산증인이다. 그는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 한 인간의 공간감각을 흉내 내기 어렵다. 앞으로 공간 지각력과 배터리 사용 시간을 6시간 이상으로 늘리는 게 과제”라고 제시한다.

도요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쪽으로 특화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이동을 돕는 생활형 로봇 개발에 주력하는 것이다. 바이올린 연주 로봇의 경우 가정·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일으키거나 걷는 것을 도와줄 수 있도록 손가락의 정교한 움직임에 공을 들였다. 도요타는 올해 본사와 각 공장에 흩어져 있는 로봇 연구원들을 실험실 한곳으로 불러모았다.

본사가 있는 나고야대 공대와 산학협동도 활발하다. 나고야대는 올해 노벨 물리·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넷 가운데 셋이 일했을 정도로 이공대 수준이 높다. 혼다보다 한발 늦었지만 풍부한 연구개발 자금을 바탕으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요타는 우선 자동차 조립라인의 자동화에 로봇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04년에는 세계 자동차 업계 최초로 팔이 두 개인 용접 로봇을 공장에 투입해 생산성을 5% 향상시켰다.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도요타 사장은 “로봇을 고령화 사회에 활용할 수 있다”며 “로봇 개발을 미래의 핵심사업 중 하나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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