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나체와 누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영어의 네이키드(naked)와 누드(nude)는 똑같이 「벌거벗은 상태의 인체」를 가리키지만 그 함축된 의미는 전혀 다르다.네이키드가 단순한 나체의 상태를 가리킨다면 누드는 예술적 소재로서의 알몸상태를 가리킨다.본래 누드라는 단어 는 18세기초 유럽의 미술비평가들이 만들어냈지만 알몸의 상태를 예술적 소재로 창안한 역사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만 해도 누드는 단순히 예술의 주제만이 아닌 예술의 한 형식이었으니 오늘날의 누드와도 개념상 큰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한데 누드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해서 모두가 예술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데 항상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가령 사진작가가나체를 작품으로 만들었을 때 그것이 다만 벌거벗은 육체의 재현인가,아니면 벌거벗은 육체를 예술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순수한 작업에 얼마나 접근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일 따위가 그렇다.그 경계(境界)를 어떤 비평가는 『만일 누드가 보는 사람에게 그 소재 특유의 관능적인 생각이나 욕망을 불러일으키도록다뤄졌다면 누드는 그릇된 예술이며 나쁜 도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드를 놓고 한 얘기는 아니지만 중국 청(淸)나라 때의문예비평가 김성탄(金聖嘆)의 말도 이 경우에 정확하게 적용된다.그는 한 청춘남녀의 정사(情事)를 리얼하게 묘사한 원대(元代)의 희곡 『서상기(西廂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음란한 사람이 보면 음서(淫書)고,성스러운 사람이 보면 성서(聖書)다.』 예술혼을 쏟아부어 만든 누드작품에 대해 몇몇 사람들이 관능적인 욕망을 품게 됐다 해서 외설물로 몰아붙인다면 예술가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네이키드와 누드를 구분하는 일은 그만큼 까다롭다.더구나 전세계적인 성개방풍조로 인해 예 술에 있어 성표현의 한계도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있으니 고정적인 잣대로 재단하기도 어렵게 돼 있다.
누드모델협회의 「누드쇼」가 외설이냐,예술이냐를 놓고 내사를 벌여온 검찰이 「무혐의」로 종결하는데도 상당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쇼의 내용으로 봐선 파격적 결론인데 일부의 「관능적 욕망」은 무시한 결과로 간주된다.하지만 이번 경우 가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