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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 - 악플 부메랑’ 가해자도 피해자도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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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전 1시쯤 고(故) 최진실씨와 관련한 ‘사채업 루머’를 유포한 혐의로 입건된 증권사 여직원 백모(25)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와의 대화는 죽 이어지지 않았다. 목소리는 기운 없이 갈라졌다. 질문을 던지면 말없이 눈물만 훌쩍이곤 했다.

통화를 두 차례 하는 동안 백씨는 ‘무섭다’는 말을 10여 차례나 했다. 그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가 5㎏가량 줄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백씨의 지인은 “반성을 넘어 죄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외출도 하지 않고 종일 방에서 울기만 한다”고 전했다.

2일 오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씨를 생전에 만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면 아마 최씨도 그랬을지 모른다. 최씨는 자살하기 전날 어머니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니 뭐니 상관이 없는데 나를 왜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울며 이야기했다. 그는 절친한 사이인 정선희씨의 남편 안재환씨의 죽음과 관련한 루머가 퍼지자 “우정조차 왜곡하는 세상이 무섭다”고 토로했었다.

백씨는 지난달 19일 정보를 주고받던 다른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받은 메신저 쪽지를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올렸다. 주변에 회자되던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한 행위는 최씨뿐 아니라 백씨 본인에게도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익명의 그늘이 드리워진 인터넷 공간에선 승자 없는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최씨가 숨진 직후 최씨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죽음을 폄하하는 악플이 적지 않게 달렸다. 그가 섭섭해하고 무서워했던 사채업 괴담은 버전을 달리하며 사이버 공간을 떠돌았다.

가해자인 백씨도 피해자가 됐다. 그의 실명과 사진·미니홈피 주소 등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인터넷에는 ‘너도 최진실처럼 당해봐야 한다’ 는 등의 악플이 순식간에 도배됐다. 루머와 악플을 만들어내는 일부 네티즌은 백씨를 추적해 ‘마녀 재판정’ 위에 세우려 하고 있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피해자로 남았다. 악플이라는 돌을 누군가를 향해 던질 때 언제 그것이 자신이나 가족, 친구나 동료를 겨냥하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 최씨를 떠나 보내며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를 사랑해 왔다’는 영화 감독들은 “인터넷이 소통의 장이 아니라 서로에게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인터넷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누구라도 루머와 악플에 의해 ‘마녀 재판정’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겼으면 한다.

정선언 사건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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