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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산층 ‘잔인한 10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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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겨온 중견업체 임원 장영학씨. 미국발 금융위기가 주택 마련, 재테크, 자녀교육 기반을 온통 헝클어뜨려 놓았다. 딱히 시원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그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김태성 기자]

중견 유통업체 임원 장영학(45)씨는 자신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구촌으로 확산하면서 그는 요즘 세 가지 고민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 값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반대로 대출이자는 치솟는 바람에 손해 보고라도 지금 팔아야 할지 잠이 안 옵니다. 이미 반토막 난 주식형 펀드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에다 자고 나면 뛰는 환율에 미국에 연수 보낸 딸을 불러들여야 할지….”

만날 걱정이지만 어느 하나도 시원한 해결책이 안 보여 답답함만 쌓여가고 있다고 했다. 장씨는 “되돌아보니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재테크 한답시고 잘 모르고 손댄 것들이 모두 상투를 잡은 것 같다”며 “찾아보면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거의 정점에 이른 2006년 말 경기도 용인 수지에 아파트를 샀다. 강북 집을 판 돈 2억7000만원에 대출 3억원을 보태 무리하게 51평짜리를 5억7000만원에 샀다. 그는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나만 ‘부동산 잔치’에 끼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교육 여건도 강남 쪽이 좋아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집을 산 뒤 1년 동안 1억원 이상 올라 장부상으로는 이자를 치르고도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올 초부터 집값이 슬금슬금 내려가기 시작해 지금 시세는 구입가보다 더 떨어졌다고 한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이 아파트 시세는 약 6억원. 하지만 인근 공인중개사가 “급매물은 5억원 이하짜리도 많다”고 하는 말에 화병이 생길 지경이다. 그간 대출 이자로 나간 돈만 4000여만원. 그의 연봉은 7200만원 정도. 담보대출 금리가 최근 10%까지 올라 이자 부담도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다.

“유일한 바람으로 아파트를 팔아 그간 들어간 부대비용만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앞으로 1억원 이상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해 난감합니다.”

주식형 펀드는 2007년 말에 가입했다.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가 넘어 펀드에 들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을 듣고 뒤늦게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있다가 들어놓은 10년짜리 저축성 보험을 때마침 타 4500만원이 생겼다. 그 돈을 들고 증권사를 찾아가자 창구 직원이 자원 부국인 브라질이 유망하다며 ‘브릭스 펀드’를 권유했다. 그게 지금은 반토막 났다.

두 아이를 둔 그는 중학교 1학년인 큰딸을 지난해 8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친구들이 미국·캐나다·호주로 다들 유학 갔다며 하도 졸라 마지못해 허락했다. 기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라 학비도 싸다는 말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시 환율은 달러당 920원대였으나 지금은 1400원을 넘나들고 있다. 매달 보내는 홈스테이 비용 800달러도 큰 짐이 돼 버렸다. 한 달에 70만원 정도 하던 송금액이 요즘은 100만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용돈·책값 등 생활비까지 다 따진다면 1년 새 송금액이 거의 2배나 늘어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며칠 전 전화로 딸에게 돌아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고는 둘 다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신문에 나오는 금융전문가들의 조언이 도움이 될까 해서 열심히 읽어보지만 한결같이 “지금은 일단 기다릴 때”라는 말뿐이라며 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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