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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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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사랑.질투.전쟁.복수의 대서사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 얘기다. 그리스 신화의 온갖 신과 영웅이 편을 갈라 싸우는 혼전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비장함으로 서양인들에게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 돼 왔다. 개봉박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로이'(볼프강 페터슨 감독)는 그 최신판이다.

신들의 전쟁인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00여년 전 실제로 있었던 지중해 패권 전쟁이다. 신화와 전설의 중간쯤인 전쟁의 주인공은 그리스 연합군 지휘관 아킬레스. 갓난아이였을 때 어머니(테티스)가 지하세계의 강물(스틱스)에 담가 온몸이 방탄인 영웅이다. 당시 어머니가 잡고 있던 발뒤꿈치 부분 아킬레스건(腱)엔 강물이 묻지 않아 결정적 약점이 됐다.

10년째 계속되던 트로이 전쟁의 양상을 바꾼 사건은 아킬레스가 총애하던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었다. 격분한 아킬레스는 총신을 죽인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를 쓰러뜨린 다음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녔다. 복수를 끝낸 아킬레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른다. 화장을 마친 그리스군 진영에선 마차경주.격투기.권투.활쏘기.원반던지기.창던지기 등 경기가 열린다. 용감한 전사에 바치는 스포츠 제전(祭典)이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올림픽이다.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神) 제우스를 모시는 신전이 있는 올림피아에서 성스러운 의식이자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다. 아테네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이 동질감을 확인하는 평화와 연대의 향연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1000년 넘게 계속되다가 서기 392년 로마 황제에 의해 '이교도 행사'라는 이유로 중단됐다.

1896년 부활된 올림픽이 처음 그리스에서 열린 것은 연고권 때문이었다. 이후 그리스는 올림픽 상설개최를 요구해왔다. 1996년엔 100주년 기념이라며 개최권을 요구했다. 대신 얻어낸 것이 올해 올림픽이다. 그러나 아테네는 올림픽을 100일 앞둔 시점까지 공사도 못 마치고 있다. 안전관리와 점검이 절대 부족하다. 미국 선수들이 '불참하겠다'고 간간이 경고해 왔다. 마침내 지난 5일 올림픽 참가자 숙소 인근 경찰서에서 3개의 폭탄이 연발하는 테러가 일어났다. 이라크 전쟁으로 평화와 화합의 제전마저 피로 얼룩질까 우려된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