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가구'냐 '개인'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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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금 혜택을 주는 저축 통장을 가구당 한개만 허락할 것인가,소득이 있는 개인당 한개씩 허가할 것인가를 두고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히 개인당 하나씩 허가하는 것이옳다.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저축은 돈을 버는 개인이 한다.
아니,돈을 벌지 않는 어린이나 노인도 누가 용돈을 주면 거기서 저축을 한다.그러니까 돈을 쓰는 사람은 다 잠재적 저축자다.요는 저축은 가구의 행동이라기보다 개인의 행동이다.더구나 식구 가운데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보다자기를 위한 저축은 자기 혼자서 할 때 더 많이 하게 된다.일본말로 「헤소구리(臍繰:배꼽에다 몰래 하는 저축)」라고 하는 것,다시 말해 부부 사이에도 서로 모르는 저축계정을 가지고 있을 때 저축은 늘어난다.일본의 높은 저축률을 설명하는 이 심리학적 설명의 설득력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둘째,가구 단위로 시행하는 정책은 얼핏 가구를 단단히 결합시키는 역할을 할 것 같지만 실은 가족을 분산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다른 집 예를 들기보다 필자의 집 예를 들겠다.우리집엔 서른 살 넘은 아이들(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 도 있으나)셋이 함께 살고 있다.다 제밥벌이는 하고 있다.큰 애는 딸인데자기 차가 필요해 사게 되었다.내 차가 있으니까 한 가구에 차가 두대다.한 가구에 승용차가 한대를 넘으면 중과세하는 것이 지금 시행되고 있는 세법이다.나와 딸 사이는 이 중과세 몫을 놓고 서로 상대방 탓이 있으므로 서먹서먹하게 될 판이었다.
분가 독립할 수 있는 나이여서 딸애로 하여금 동사무소에 가 분가신청을 하도록 했다.딸애를 단독 가구로 주민등록을 처리해 놓으면 한가구 차 한대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동사무소에 다녀온 딸애의 말인즉 결혼하지 않은 딸은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주소 안에서는 분가할 수 없다고 담당자가선언하더라는 것이었다.이 말을 듣고 설마 그러랴 싶어 동사무소에다 직접 전화를 해 물어보았다.동사무소 사람이 내게 한 마지막 말이 하도 걸작이라 소개하겠다.
『선생님 같이 잔꾀를 부려 한 집에 차가 두대면서도 중과세를피하려는 사람이 있어 시집 안 간 여자는 한 집 안에서는 분가를 못 하게 해 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나는 이 제도에 저항하기로 작정했다.바로 근처에 사는 애들 이모집으로 딸의 주민등록을 옮기도록 시켰다.안 그래도 좀 보태서 말하면 반은 그 집에서 사는 애였으므로 주민등록법에도 위장전입 따위가 문제될 것은 없었다.
농업사회라면 몰라도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넘으면 소득활동이든 소비.저축 활동이든 개인을 가구 속에 묶어 제한하는 일은 도리어 가구파괴라는 역효과마저 낳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1가구 1주택 제도도 그렇다.이 제도 아래에서는 나이만 되면 「나홀로 가구」로 독립하는 것이 주택구입에 유리하다.이런 제도가 없었더라면 부모와 함께 살다 천천히 「내집 마련」을 해도 좋다고 여겼을 젊은 부부에게 강력한 당장 분가(分家)유인(誘因)을 제공함으로써 주택 수 요를 증가시키고 조기화시킨다. 일정한 나이만 차면 가구에 관계없이 자기집을 가질 수 있다고 해놓으면 오히려 가구를 분리해 나와 빨리 자기집을 가져야겠다는 유인은 그만큼 줄어든다.부모와 자식.손자 3대가 한집에서 좀더 오래 살 유인은 그만큼 불어난다.아들과 손자 에게는가정교육의 기회가 많아지고,사회는 그만큼 더 두터운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런 간단한 역설의 진리를 체득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 입안자가 지능이나 성의가 모자라는 탓 아니면 고의적으로 국민의 일부를 속이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가구 1차」,「1가구 1주택」,「1가구 세금혜택 1통장」등 개인 대신 가구로묶어 놓으면 특히 가난한 사람의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에는 호소력이 있을 수 있다.
지금같은 고비용.저생산성.중간품질 고착,이 세가지 장기적 요인때문에 생긴 경제난국을 타개하는 첫번째 길은 저축 증대다.특히 부동산이나 다른 실물 아닌 예금.증권 형태의 저축이 늘어나야 한다.그래야 기업은 싼 이자를 쓸 수 있고,개 인은 일자리가 튼튼하다.국제수지 적자를 축소하는 것도 우선 저축이 늘어나야 한다.「가구당」대신 「개인당」을 들여놓음으로써 역(逆)은 여러가지 줄이고 순(順)은 여러가지 불어나게 할 수 있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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