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29.해태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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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세대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라.』 박건배(朴健培.48)회장은 최근 사장단회의에서 사장들에게 이같이 말하면서 최근 랩송을 최소한 한곡씩은 부를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는 신세대들의 사고나 몸가짐을 꿰뚫어야효율적인 마케팅은 물론 미래의 사업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는 것이 朴회장의 지론이다.
과자등 식음료위주의 내수산업에 안주한 보수적인 사풍을 뜯어고쳐 「젊은 해태」를 다시 만들겠다는 朴회장의 뜻이 짙게 배어 있다. 95년10월 그룹창립 50주년 행사가 소리 소문없이 치러진 것도 그룹임직원에 대한 무언의 채찍이었다고 한다.
실무자들이 기획한 각계인사 초빙 리셉션이나 대규모 공개행사는기획단계에서 모두 백지화시키고 임원골프대회도 퇴짜를 맞았다.
『지금은 몇억원씩 써가며 요란하게 자축할 시점이 아니다』는게朴회장의 신념이다.기업은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지 일정 시점에서 잔치분위기에 휩싸여 해이해져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朴회장 스스로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보통신등 관련 원서등을무척 많이 읽는 독서광이다.매주 신간도서 목록을 보고 직접 읽을 책을 고른다.
朴회장은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그의 지적 탐구욕의 일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해태그룹은 朴회장의 선친인 박병규(朴炳圭)회장이 77년 타계한후 4년만인 81년 창업동업자인 신정차(申正次).민병덕(閔丙德)씨와의 「3인 동거체제」가 깨진다.이때 2세들간의 분가(分家)로 朴회장은 33세에 경영대권을 승계하게 된다 .
분가과정에서 당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던 해태제과.음료.상사등 3개사를 맡아 수성(守成)도 쉽지않은 형편이었다.
朴회장은 이때 식품사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유통.조립금속등으로과감히 사업영역을 넓혔다.취임 한달만인 81년 광고대행사 해태기획(현 코래드)을 시작으로 해태유통.해태타이거즈를 잇따라 설립했다. 90년대 들어선 오디오전문업체인 인켈과 나우정밀등을 연거푸 인수해 정보.통신분야에까지 발을 깊숙이 들여놓았다.
***33세에 경영대권 승계 매출 4조원 규모의 해태그룹을 일궈낼 때까지 한번 손댄 사업은 제궤도에 올려놓았다.현재까지 그의 공격경영은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이런 점에서 그룹관계자들은 朴회장이 단순한 2세경영인이라기보다 「제2창업자」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朴회장은 기업이 사회부패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것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다.그는 사회가 맑아지기 위해선 괴외등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여야한다고 강조한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육성했던 전두환(全斗煥)대통령시절 全대통령에게 교육투자가 체육투자보다 우선이라고 직언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재무관리를 전공한 朴회장은 경영계수에 밝다.경영보고도 계열사 사장을 직접 불러 1대1로 받는다.
그룹 관계자들이 대학수능시험으로 비유하는 이같은 「1대1경영보고」때 계열사 사장들은 숫자를 달달 외우고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기별 경영보고가 있었으나 자율경영을 확대한다는 차원아래 올해부터 반기에 한차례씩 열고 있다.
그러나 부진한 경영실적을 이유로 임원들을 가차없이 내쫓는 일은 하지 않는다.朴회장은 『자르려 해도 입장을 바꿔 그들의 가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며 『해태에 몸담다 다른 회사로 옮기면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고 말한다.
친동생인 박성배(朴成培.42)부회장에게도 주식은 물론 이익을넉넉하게 분배해준다.오너형제가 최고경영에 함께 참여하면서 재산분배와 관련한 구설수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뿐 아니다.그는 그룹경영에 기여한 경영진에게도 주식을 나눠준다.많게는 해당계열사 주식의 5%까지 주기도 한다.논공(論功)은 철저히 하되 필벌(必罰)은 하지 않는 셈이다.해태제과등 기존 식음료사업에 정통 해태맨들이 포진해 있으나 비식품군인 전자.통신등엔 영입파들이 해태의 공격경영을 이끌고 있다.
우선 회장단에도 정통 해태맨인 김현곤(金玄坤.62)해태음료부회장.박성배 해태유통부회장외에 선경출신 유영일(兪英一.64)부회장이 포함돼 있다.
특히 金.兪부회장은 그룹 원로급으로 그룹이 주요시책을 결정할때 朴회장의 조언자역도 한다.
金부회장은 54년 입사한 정통 해태맨으로 그룹의 산증인이다.
그룹의 주력인 제과.음료사장을 맡을때 신제품 아이디어로 내놓아히트시킨 상품이 많아 「신제품제조기」란 별명을 갖고 있다.최근에 시판중인 사과.배주스도 金부회장의 아이디어라 고 한다.
***“論功하되 必罰않는다” 兪부회장은 같은 선경그룹 출신인유철웅(劉鐵雄.55)사장과 함께 해태상사에서 「유-유라인」을 형성해 오늘의 해태상사 경영기반을 닦은 대표적인 영입파.
84년 해태에 합류한 그는 제과.음료.양주의 원료수입부문에 치중하던 사업영역을 확대해 매출 1조원의 회사로 키웠다.
朴부회장은 사업수완이 뛰어나 백화점사업에서 할인매장인 하이퍼마켓을 신설했고 40개 수준에 머물렀던 슈퍼마켓도 60개로 늘렸다.그는 패션감각도 탁월해 해태상사의 특수사업으로 분류된 청바지.내의사업 진출을 주도했다.
정기주(程己柱.54)종합조정실 사장은 그룹안에서 식음료 영업통으로 손꼽는 경영인으로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이후 해태유통의 관리와 경영본부장을 거치면서 경영관리 분야에대한 경험을 쌓았고 94년부터 2년6개월동안 인력개발원장을 지냈다. 지난 7월 朴회장이 그를 종조실 사장에 기용한 것도 그의 다양한 경험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朴회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투자.인사분야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 양종석(梁鍾錫.55)해태제과사장은 그룹이 내세우는 기업인수.합병(M&A)전문가.73년 해태제과 회계과장으로 입사해 줄곧 회계.경리분야에 일한 뛰어난 자금관리통.94년엔 그룹감사를 맡기도 했다.또 84,89년 두차례에 걸쳐 종조실 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朴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모기업 해태제과의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해태전자 신정철(申正澈.53)사장은 해태제과에 있다 한때 개인사업을 하기 위해 그룹을 떠났으나 다시 컴백한 케이스.朴회장이 그의 경영수완을 높이 사 93년 전자총괄부사장으로 불러 그룹이 주력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전자정보통■사업의 핵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해태제과 제과부문 박근영(朴根榮.56)사장은 그룹이 손꼽는 영업통.해태음료 재직때 다단계 판촉체계를 갖추는등 영업기획력이돋보여 제과로 자리를 옮길때 사장으로 승진했다.한번 세운 영업목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밀어붙이는 「불도저」형 이나 선이 굵어 부하들의 신망이 높다.
광고회사인 코래드의 김명하(金明河.58)사장은 국내 광고계의원로중 하나다.20여년동안 줄곧 광고분야에만 몸담아 언론계.재계인사와의 교류폭이 넓다.96년6월 「96서울세계인광고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마의웅(馬義雄.55) 해태타이거즈 대표이사는 朴회장의 경복고선배로 백두진(白斗鎭).박준규(朴浚圭) 전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을 지냈다.84년 그룹홍보담당 이사로 해태에 합류했으나 잠시 국회에서 일한후 92년 종조실 부사장으로 컴백했 다.정.관계,언론계 인사들과의 지면이 넓은 마당발이다.
승부욕도 강해 야구팀인 타이거즈의 이름을 딴 「타이거 마」라는 닉네임을 최근 얻었다.
박인배(朴仁培.55)해태제과 건설부문 사장은 朴회장의 사촌형이다.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74년 해태제과 건축과과장으로 들어온후 지금까지 건축분야에만 종사해 왔다.
지난해 창립50주년을 넘긴 해태그룹은 최근들어 「탈(脫)식품」의 사업구조 개편에 그룹의 명운을 걸고 있다.과자.음료로 그룹의 기반을 다졌지만 21세기 사업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정보통신.유통.건설등으로 주력 사업군을 옮기겠다는 것 이다.
***식음료 비중 25%대로 또 2000년까지 매출 10조원을 올려 재계랭킹 10위권에 진입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추진중이다.해태전자에 인켈.나우정밀등 2개사를 묶기로 한 것은 대규모연구.개발.투자를 통해 전자 3사와의 경쟁에 나서기 위한 것이다.5년안에 식 음료 매출비중을 지금의 절반수준인 25%대로 떨어뜨리고 나머지는 전자등 신규사업으로 벌어들인다는 계획.
그러나 지금까지 식품위주의 소비재산업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해온 해태그룹이 대대적인 투자가 소요되는 첨단업종으로의 전환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란 지적도 있다.
재계는 스스로 정보통신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는 朴회장이 어떤 방향으로 해태를 향후 5년안에 10대그룹으로 도약시킬 수 있을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다음은 극동그룹편〉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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