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임순례 감독 "세친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매년 대학에 들어가는 청소년은 열에 세명이 될까 말까다.나머지 일곱은 사회의 조명등에서 비켜난다.다수면서도 보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수의 대학생층에 편입되려고 몸부림쳐야 하는 이 낙오자들은 분명히 세상의 모순이다.
지난 3일 첫공개된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11월초 개봉예정)는 그런 세 낙오자의 얘기다.낙오자들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해피엔딩이나 희망의 암시로 끝맺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다.제자들이 교사의 승용차를 때려부수는 고교졸업식으로 시작한다.영화는 이날부터 실업자가 된 세 졸업생에게 앵글을 맞춘다.살을 찌워 군대를 피하는 것이 지상목표인 삼겹,만화가가 되고 싶지만 부모의 무관심과 사회의 냉대때문에 줄곧 삐딱한 길을 걷는 무소속,여성적 성격으로 부모를 실망시키는 미용사 지망생 섬세.영화는 이들이 낙오의 수렁을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다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세밀한 스케치와 재치있는 유머로 그려내면서 관객을 흡인하다가 돌연 희망없이 마무리하는 방식은 홍상수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남성적인 냉정함이 배어있는 『돼지…』에 비해 『세친구』는어딘지 따스하고 완곡한 어법으로 한국사회의 경직된 권위구조를 드러내는 점에서 색깔이 다르다.이 어법은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에게 절망만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한 각자의 숙제를 떠올리게 하는 질료가 돼준다.
『세친구』는 대기업에서 제작비를 전액 지원받았지만 철저한 독립영화를 지향한 신예 여류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아온영화였다.
여성감독임에도 한국청년들의 통과의례인 신체검사와 내무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한 점이 돋보이는데 경직된 사회구조에 반감깊은 감독의 감수성이 체험을 초월한 전달능력을 발휘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너무 정적인 앵글과 신선하지만 어딘지 어색한 아마추어배우들의 연기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움을 지향한 나머지 오히려부자연스러운 연출이 돼버린 듯해 아쉽다.
한국만의 독특한 풍경인 입대전후 청년들의 일상을 소재로 한 것은 이 영화가 외국관객의 눈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음을 느끼게 해준다.『세친구』는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와 밴쿠버영화제 본선에 올라있고 그밖에도 많은 해외영화제에 진출이 예 정돼 있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