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주눅들게한 美교통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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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강남과 강북 강변도로 전부 물에 잠겨 통행 불가능.
강남지역의 도심 진입로 대다수 통제.
학생들이 개학한지 1주일 지난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
만약 서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시내로 들어오는 교통상황은 어떻게 될까.
「교통지옥」「교통대란」,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교통 비상상황이발생할 것은 분명하다.몇시간씩의 정체는 당연할 것이고 수천명의교통경찰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길위에서 어떤 장면들이 벌어질 것인지는 아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9일 아침,「무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시다.
미동부를 잇따라 강타한 폭풍이 동반한 폭우로 동북부 6개주와워싱턴시 주변은 말 그대로 물바다가 됐다.
워싱턴시의 한강이라 할 수 있는 포토맥강은 황토빛 탁류로 변하며 범람,강변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 주변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처럼 만들었다.
이같은 상황하에서 맞은 월요일 아침.기자는 출근길의 고통을 각오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워싱턴시의 통근자들 대부분이 서울의 강서및 강남이라할 수 있는 버지니아.메릴랜드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다섯개 밖에 없는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곡예운전을 해야할 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각오가 돼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상은 빗나갔다.비록 차들이 거북이 걸음으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정체에 대처하는 운전자들의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4차선이 1차선으로 줄거나 도로가 합쳐지는 병목지점에 이르면 차량들은 흡사 번호표를 받은 듯 움직였다.4차선에서는 차례로 한차선씩,교차로에서는 번갈아 한방향씩 약속이나 한듯 순서가 지켜졌다.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같은 통제가운전자들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차량이 밀렸던 10㎞ 정도의 구간 어디에서도 교통순경이나 다른 통제원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교차로가 많아 정체가 더욱 심해진 워싱턴시내 2㎞가량의 도심에서는 아예 차창문을 내린채 「경적 검사」를 해봤다.
40여분간 빠져나가는 동안 욕설은 물론 단 한번의 클랙슨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사무실까지 평소의 배가 되는 2시간여가 소요됐지만 짜증보다는 신기함이 더 가슴에 남음을 느꼈다.
무엇이 다르기에 이같은 차이가 나는지 착잡하기도 했다.나라 곳곳이 침수되는 것을 보고 「미국도 별로 다를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가 출근길에서 완전히 주눅이 들어버린 하루였다.
김용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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