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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사열식과 시가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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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10월 1일은 ‘국민의 군대’ 국군이 창설된 지 60년이 되는 ‘국군의 날’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육십갑자(六十甲子)의 한 순간이 끝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는 회갑(回甲)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 군은 국가적 재난과 환란, 그리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일구어 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정예화 된 선진 강군 육성’을 기치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건군60주년 국군의날 기념식,081001,잠실올림픽주경기장. 김태성 기자

10월 1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된 건군 제6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은 우리 군의 지난 6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60년을 계획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제병지휘관의 보고와 대통령 사열, 국가유공자 증서 및 훈·표창 수여, 공연 및 특전사 시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보통 사열식(査閱式·review)이란 국가가 보유한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예방한 국빈(國賓·state guest)에게는 군사적으로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의전행사를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의 사열식은 국가원수나 사열관·지휘관 등이 장병들을 정렬시켜 놓고 군사 교육의 성과와 장비 유지 상태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열식은 부대가 사열대 앞을 통과하는 행진(march(or pass) in review)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대의 집결(formation)·부대 경례(present arms)·열병(inspection)·분열(pass in review) 등의 모든 의전을 포함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여기에 국기에 대한 경례, 귀빈 또는 국가원수·지휘관 연설(remarks), 사열 종료(conclusion)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 사열은 여느 사열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행사장 특성으로 인해 대통령 사열 시 주요 무기체계를 완전히 배제함으로서 주변국, 특히 북한에 대한 불필요한 군사적 자극을 최소화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지난 60년간 국민의 군대로 성장해 온 우리 군의 지난 60년을 축하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한마당 축제라는 당초 행사 취지에도 부합했다. 과거 서울공항에서 진행된 ‘국군의 날’ 행사에서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대통령 단상 앞을 지나가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룬 부분이다.

관점에 따라 과거 ‘국군의 날’ 행사에 비하면 규모면에서는 오히려 축소됐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무를 책임진 군 관계자들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국민과 함께 하는 국민의 군대로서, 보다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잠실종합운동장이라는 공개된 장소가 선택되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실제 눈에 각종 첨단무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열식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국군의 날 행사장에 하나도 빠짐없이 집결한 우리 군의 수많은 군기가 바로 국군 그 자체라는 설명이다.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사열식은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제3대 왕 람세스 2세(Ramses II·재위 B.C. 1279∼B.C. 1213)가 이집트를 방문한 히타이트 왕 무와타리시와의 화평 과정에서 이집트 전차 사단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당시 이집트 전차 사단은 파라오의 친위부대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지역 최강의 전투 부대로 평가받고 있었고 적대 국가의 원수가 상대 국가의 군사력을 시찰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계기로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진정한 화평을 맺을 수 있었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참고해 볼만한 대목이다. 이후 세계 각국은 내적으로는 군 통수권을 갖고 있는 국가원수와 국민에 대한 존경과 절대 복종을, 외적으로는 상대 국가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열식의 의미를 발전시켜 왔다.

건군 제6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사열식이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면 이어 진행된 시가행진은 순수하게 민군 화합을 위해 준비된 행사다. 종합운동장 인근 삼성교에서 역삼역까지 3㎞ 구간에서 진행된 시가행진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각종 국산첨단무기가 대거 등장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시민들은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특히 각종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던 자랑스러운 첨단 국산무기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국민에게 우리 군의 참모습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군부대의 대규모 시가행진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볼거리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매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Bastille Day)과 매년 5월 9일 러시아 대독승전기념일 퍼레이드 정도를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에서 드문 대규모 시가행진으로 유명하며 주변국이나 동맹국의 군대를 초청해 함께 샹젤리제를 행진하기도 한다. 흔히 군의 시가행진은 개선행진의 전통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며 역사적으로 개선행진을 가장 활발하게 한 국가는 로마제국이었다. 동서냉전이 한창일 당시 구소련의 시가행진에는 개발 중이거나 개발 완료된 각종 첨단무기가 등장했기 때문에 항상 서방 정보기관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는 건군 60주년 기념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남북관계가 미묘한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건군 60주년을 맞은 우리 군의 발전상을 자축하고 대내외에 알리는 두 가지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한 것이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계동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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