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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경주 국가 대항전 ‘A1’ 첫발 황진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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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5일(한국시간) 네덜란드 잔드보르트에서 열린 A1그랑프리 2008~2009시즌 개막대회에서 코리아팀의 황진우가 2004년형 페라리 경주차로 서킷을 질주하고 있다. 차 뒤에 ‘독도는 한국땅’이란 글귀가 선명하다. [잔드보르트(네덜란드)=연합뉴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축구대회에 처녀 출전한 한국은 헝가리와 첫 경기에서 0-9로 대패했다. 그 씨앗은 2002년 4강 신화로 이어졌다. 국가 대항 자동차 경주인 A1 그랑프리(GP)에 사상 처음 출전한 ‘A1 팀 코리아’도 그랬다. 미약한 출발이었음에도 데뷔 무대에서 승점을 따내며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5일 네덜란드 잔드보르트에서 열린 2008~2009 A1 GP 피처 레이스에서 황진우(25·사진)를 드라이버로 내세운 한국은 17개 참가국 중 7위에 올라 승점 4점을 얻었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 무려 10개국이 중도 탈락한 가운데 차분하게 레이스를 전개한 작전의 승리였다.

앞서 열린 스프린트 레이스에서 한국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호주를 추월하다 충돌해 벌금까지 내야 했다. 전날 열린 예선에서도 한국은 잔디밭으로 미끄러지며 레이스를 포기했다. 두 차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데뷔 무대에서 값진 열매를 맺은 것이다.

4500cc 페라리 엔진에서 600마력의 힘을 뿜어대는 ‘괴물 머신(경주용 자동차)’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황진우는 “경차만 몰다가 난생 처음 스포츠카를 탄 기분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좁디 좁은 콕핏(운전석)은 갑옷처럼 황진우를 옥죄었다. 스티어링 휠을 1㎜만 잘못 움직여도 차체가 무섭게 흔들렸다. 머신을 지면에 밀착시키는 다운 포스 때문에 온몸은 땅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타이어의 접지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속도를 높이다가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도 그가 전에 몰던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했다. 시속 300㎞에 육박하는 속도를 내면 시야는 야구공만큼 작아졌다. 코너를 돌 때마다 가냘픈 목을 꺾는 원심력을 가리켜 그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20배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진우는 93년 ‘지옥의 레이스’라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한 1세대 레이서 황운기(57)씨의 아들이다. 아버지 덕분에 15세 때 카트에 입문해 차곡차곡 국내 정상급으로 성장했다.

A1 GP는 중국·뉴질랜드·영국 등 전 세계를 돌며 내년 5월까지 아홉 차례 더 열린다. 김정용 A1 팀 코리아 구단주는 “한국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잔드보르트(네덜란드)=이해준 기자

◆A1 GP=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인 F1과 경쟁을 선언하며 2005년 출범했다. BMW·도요타 등 제조사를 앞세운 F1과 달리 A1은 동일한 성능의 머신으로 치르는 국가대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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