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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봉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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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는 동부의 미시간대학을 졸업했다.”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있는 미시간대학 학생회관 입구에 새겨진 문구다. ‘중부’를 대표하는 대학을 두고 ‘동부’의 미시간이라니…. 이 ‘엉터리’ 문장을 남긴 사람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1960년 11월 미시간대에 들른 그는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를 미시간대의 동부 분교쯤으로 비유하고 미시간대를 최고의 명문으로 치켜세우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케네디는 이날 연설에서 ‘평화봉사단’(Peace Corps) 의 창설을 제창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을 개발도상국에 보내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뉴 프런티어’의 기치를 내건 케네디의 정치철학에 잘 부응하는 것이었다. 동서 냉전의 와중에 소련과의 체제 경쟁이 한창인 시절, 평화봉사단을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는 미국의 국가안보에도 기여할 것이란 전략적 발상도 들어 있었다. 단원들은 주재국 국민과 똑같이 먹고 자고 현지 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아예 대통령령에 규정돼 있다. 때문에 봉사활동이란 애초의 목적 이외에도 철저한 현지 체험을 통해 각 지역 전문가를 배출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활동한 것은 1966년부터 81년까지로 3200명의 봉사단원이 다녀갔다. 무의촌 의료봉사와 직업훈련, 노력봉사 등과 함께 원어민 교사가 귀했던 시절 전국의 중·고교로 파견돼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청춘 시절 2년간을 한국 땅에서 보낸 그들은 자연스레 미국 내 친한·지한파 인맥을 형성했다. 6·25 참전용사 세대가 고령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공백을 평화봉사단원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어제의 봉사단원들을 초청해 달라진 오늘의 한국을 보여 주고 오랜 시절 연락이 끊겼던 친구나 제자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은 오랜만에 듣는 흐뭇한 소식이다. 한국의 서민 생활을 체험했던 그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호텔을 마다하고 여관방을 숙소로 잡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때마침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영어교사 생활을 했던 캐서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 대사가 부임해 왔다. 풀뿌리 한국 사회를 체험한 신임 대사의 외교 활동도 한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정감 넘치는 외교가 되길 기대한다.

예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