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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가요-리메이크곡.팝송 모음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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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 기업을 비롯한 사회전반에서 가장 환영받는 인재는 창의력.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이런 아이디어맨들을 위해 「골드 컬러(Gold Color)」라는 호칭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로 상상력이 우대받는 시대다.그런데 가장 풍부하게 상상력이 작용해야 할 대중문화계는 오히려 상상력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이런 상상력 빈곤의 증후들은 최근의 대중음악계를 살피면 금세 알수 있다.
TV를 켜기만 하면 출몰하는 고만고만한 레이브 댄스 그룹들,십수년째 같은 방식으로 애이불비(哀而不悲)를 노래하는 발라드가수 친구들은 논외로 해도 될만큼 많은 이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이외에 상상력의 부재를 나타내는 두개 의 지표가 있다.하나는 리메이크 열풍이고 둘은 팝송 모음집의 상업적 성공이다. 먼저 리메이크를 살펴보자.최근 인기를 끈 리메이크곡으로는 『님아』『그리움만 쌓이네』『인연』『단발머리』『아파트』『님은먼곳에』『미인』등이 있다.그리고 요즘 웬만한 신보들에는 리메이크곡들이 한곡씩은 꼭 끼어 있을 정도로 유행이다.
이런 되새김질곡들은 엄청난 인기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대중가요시장의 한 기둥을 지탱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리메이크의 유행이 곱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새로운 해석이나 접근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되새김질 곡들은 상상력의 고갈속에서 일정한 상품성이 확보된 소재로 적당히 성공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메이크의 유행은 창작자의 어려움과 고통,소재빈곤을 나타내주는 지표라고 유화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창작의 어려움,고통,소재의 개발없이도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상업적 처세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뮤직박스 차트 8월31일자를 보면 팝송순위 10위권안에 들어있는 앨범중 5개가 아티스트 이름이 없다.
이유인즉 이들이 각종 모음집 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미상 후보작을 모은 『96 Grammy Nominees』,히트곡 모음인 『Mega Hit』나 『Rock Ballad』,댄스뮤직 선곡집『Now』『DJ Club』등이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음반회사들이 이런 유의 모음집을 계속 내는 것은 상업적으로 홈런은 못쳐도 안타는 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성공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 신인가수의발굴에는 소홀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리메이크나 모음집의유행이 계속 지속된다면 대중음악에서 신선한 실험들과 다양한 장르실험의 통로는 그만큼 협소해질 것이다.
그리고 협소함의 너비만큼 한국대중음악은 정체될 것이고 그 정체함은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노염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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