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학"편집권 반납-創刊20돌기념 가을號로 일단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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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장』이란 문예지가 있었다.1939년2월 소설가 이태준이 주간을 맡아 월간으로 창간된 『문장』은 좋은 문인과 작품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청록파로 불리는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시인을 문단에 내보낸 잡지로 유명하다.그러한 『문장』이 1941년2월호 즉 2주년 기념호에서는 소설창작만 실었다.일제아래 한글 창작이 불가능할 것을 예견하고 우리 문학을 한 편이라도 더 남겨두려 명망있는 작가의 작품을 모두 실은 것이다.그리고 그해 4월 『문장』은 폐간당했다.
최근 나온 『세계의 문학』가을호는 창간 20주년 기념호로 창작 특집으로만 꾸몄다.김우창.유종호.이남호씨등 『세계의 문학』책임편집자들은 「편집자의 말」을 통해 반세기 전 『문장』이 처했던 상황과 심정을 새삼 되새김질하게 된다고 토 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호를 끝으로 편집권을 모출판사인 민음사에 반납한다고 밝혔다.
천지(天地)가 투명성을 되찾아가는 이 가을,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문학을 통해,인문적 지성을 통해 일깨워온 정통문예지가 왜 이렇게 슬픈 「항서(降書)」를 써야만하는가. 어떤 시대를 살더라도 소중하게 지켜야할 근본적인 가치들,모든 훌륭한 예술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점점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인간적 가치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문학작품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또 생산되지도 않고 있으며 비평의 기준도 혼돈에 빠졌고 참된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의 필요성도 무시되는 시대적 분위기가 항서를 쓰게 한게 아닐까.그 항서는 인간이 기대어삶의 기쁨과 지성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가치들에 무관심한 문화,거짓으로 이러한 가치를 흉내내는 상업문 화에,또 선전과 광고와 행사가 실질과 의미를 대신하는 「쇼 같은 시대」에 바쳐진다.그러나 「몇몇 편집위원이 책임편집을 하는 문학계간지의 오랜관습을 깨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민음사 편집부로 편집권을 넘긴다」고 밝히고 있듯 『세계의 문학』이 지난 20년간 지켜냈던 인간적 가치와 인문적 지성을 어떻게 새로운 틀로 지켜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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