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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作을찾아서>오규원 산문집 "가슴이 붉은 딱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내가 머물고 있는 무릉(武陵)은 도원(桃源)의 입구에 있다(상징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그렇다).그리고 이곳외딴 슬래브집은 남향의 뜰을 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주천(酒泉)의 강에 붙어 있다.강변에 붙어 있으므 로 집은 언제나 맹목에 가까운 적막을 안고 있다.그 적막은 어느 강변의 집에 가보아도 그곳에 있는,머물고 있는 것들이 흐르면서 사라지는것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체감하는 강변에의 비극적 정서다.』 중진시인 오규원(吳圭原.55)씨가 산문집 『가슴이 붉은 딱새』를펴냈다(문학동네刊).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정도의 냉철한 지성의 견고한시세계를 펼치던 그가 지난 4년간 강원도영월군수주면무릉리에 머물며 쓴 산문이 『가슴이 붉은 딱새』다.산문집 첫 단락에 보이듯 무릉리 안쪽에는 도원리가 있고 그 앞으로는 주천강이 흐른다.마을 이름,강 이름을 전설적 선경(仙境)인 무릉도원에서 따왔을 그 산첩첩 물첩첩 막힌 곳에서 대지와 함께 호흡하며 얻어낸우주적 사유의 산물이 이 책이다.
총 14편으로 구성된 이 산문집에서 각 편은 9세기의 유명한선승(禪僧) 조주(趙州)의 선문답 인용으로 시작된다.『「하루 스물네 시간을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그대는 스물네 시간의 부림을 받지만 나는 스물네 시간을 부릴 수 있다.그대는 어느 시간을 묻느냐?」.』吳씨는 이같은 화두를 하나씩 내놓고 투명한 지성과 언어,관조와 명상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러한 화두들은 문 옆에 핀 채송화,마당에 놀러온 새떼,조팝나무와 서산,서산으로 가는 길과 길위에 쏟아지는 햇빛 알갱이등자연에 대한 사색에 의해 풀리기도 한다.그 작은 생명들을 무한히 우주로 확산해가며 시간 속에 생멸하는 존재의 하염없음을 포착해낸다.점잖고 깊고 냉철한 상상력이 환기하는 삶의 신비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력」을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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