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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도 내것 아냐 용납되는 자살은 없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호 01면

‘국민 배우’ 최진실(40)씨가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20년간 TV 브라운관에서 울고 웃으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많은 사람이 큰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고민과 모방 자살이 잇따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엇갈리는 교차로에 우리는 서 있다. 이 시점에 김지하(67·사진) 시인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가 줄기차게 펼쳐온 ‘생명사상’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1991년 5월 ‘분신 정국’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에서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자살 문화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고 청한 끝에 김 시인과 어렵게 자리를 함께했다. 강한 개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였지만 세월의 탓인지 이젠 표정도 누그러지고, 목소리도 나지막해진 느낌이었다. 최진실씨의 죽음부터 물었다.

김지하 시인이 ‘자살공화국’에 보내는 쓴소리

-최씨의 자살로 충격이 크다.
“안재환씨도 그렇지만 연예인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이다. 주가 변동처럼 쉴 새 없이 출렁거리는 인기도에 따라 방송국에서 콜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된다. 세상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씨처럼 명성이 자자한 탤런트가 자신이 사채업과 관련돼 있다는 식의 소문을 접하고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 시인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하지만 뒤이은 그의 말은 단호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씨가 남긴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책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제 목숨이라고 해서 자기 것만은 아니다. 가족은 물론 사회와 상호 연관돼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고 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 아닐까.
“우울증, 생활고, 기질적 유약성, 사건의 충격, 가족이나 친구의 배신…우리는 자꾸 이런 것들에서 자살 원인을 찾는다. 이른바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그렇게들 얘기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저런 원인에 있는 게 아니다. 작은 병리를 가지고 자살의 원인을 판단하는 자체가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있는 자살은 없다.”

-자살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로 모방이 우려되고 있는데.
“모든 형태의 자살은 동기가 무엇이든, 자살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을 죽인 상태다. 거기에 명분이나 이유 하나만 걸어 주면 그대로 죽음으로 향한다. 사회가 ‘너의 죽음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줘선 안 된다. 단호해야 한다. 한 해에 몇 명 자살한다고 발표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자살을 보편적 현상으로 여기게 된다. 내가 죽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하고…절망의 에코(메아리)다.”
김 시인이 자신의 자살 기도 사실에 관해 입을 뗀 것은 그때였다. “스물 한두 살 때 대학 다니던 무렵”이라고 했다.

“살기가 어렵고, 세계가 정확히 이해가 안 되고, 그 세계에서 내 자리가 정확하지 않았다. 첫사랑도 일찌감치 실패했다. 도무지 나 자신을 인정할 근거가 없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불면의 밤이 이어지면서 자살 충동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세 번 자살을 기도했다. 죽음 직전까지 가 봤다.”
그는 어떻게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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