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북지원 체계적으로] 4. 공장이 돌아야 숨통 트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 한국의 여성속옷 생산업체 엠에스클럽 관계자(左)가 남포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엠에스클럽 제공]

"종업원 1만명, 연간 생산능력 3만대였던 공장에서 단 한대도 생산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몇백대를 생산하는 정도이니…."

1950년대에 설립된 북한 금성 뜨락또르(트랙터)공장의 한 관계자가 지난 3월 이 공장 보수를 지원하고 있는 국내 한 기업인에게 한 말이다. 이 공장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시절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가 최근 10~2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개혁을 통해 공장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생산계획권을 공장에 이관했다. 공장이 비현실적인 생산량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북한은 2~3년 안에 모든 공장을 점검, 자립능력이 없는 공장은 청산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효과를 낸다 해도 이른 시일 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게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화수입이 거의 없어 에너지와 원자재 등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공장개혁'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때 우리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공장이 가동될 수 있는 지원을 해주면 북한 경제난 해결에 상당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측면들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론 위탁가공 교역(생산설비와 원자재를 제공하고 생산물을 받아오는 교역)의 확대를 통해 북한이 외화수입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중장기적으론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북한 공장들을 선정해 기술지원이나 시설 개보수를 해주는 방안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위탁가공 교역 확대"=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공장의 정상화는 생산설비를 교체하거나 원자재 확보에 필요한 외화를 조달할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요 외화 수입원인 무기 수출이 막혀있는 북한의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이 외화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통로 중 하나는 남한과의 위탁가공 교역이다. 일본 사사카와 재단의 이찬우 주임연구원은 "북한은 노동력 활용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수입을 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봉제.의류 등 노동집약적 산업분야에서 남한과의 위탁가공 교역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남북 위탁가공 교역을 통해 이익을 낸 성공 사례는 많지 않았다. 비싼 물류비용, 북한 근로자들의 소극적 작업태도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2002년 경제 개혁 조치 이후 위탁가공 교역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여성 속옷 생산업체인 엠에스클럽이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2001년 남포 공장에 재봉틀 등 생산설비를 투자한 지 1년 만에 흑자를 냈다. 김성기 사장은 "2002년 북한의 경제 개혁 조치 이후 근로자들이 임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자세가 한몫을 했다"고 말했다.

특히 북측은 이 공장에서 번 수입으로 고가(高價)의 재봉틀들을 스스로 설치, 생산을 늘리려는 의욕까지 보여주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처럼 위탁가공 교역의 성공은 북한 공장 가동률 신장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북 투자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金사장은 강조했다.

◇"생필품 공장 시설 개보수"=한국산업은행 동북아연구실 최임봉 연구위원은 "북한의 산업수준을 한국의 70년대 초로 가정하고 북한의 산업을 남한의 5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앞으로 10년에 걸쳐 약 217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천문학적 액수다. 또 북한 핵 문제도 걸려 있다. 따라서 핵 문제가 가시적으로 해결돼 가는 데 발맞춰 단계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생필품을 생산하는 공장 중 경쟁력 있는 몇개를 선정, 시설 개보수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 대상은 입지조건이 좋은 서해안 일대의 평양.안주.신의주 공업지대에 있는 생필품 공장들에서 선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이 올해 초 '본보기 단위(모범공장)'로 선정해 집중지원하고 있는 평양방직기계공장. 영변견직공장을 비롯해 신의주신발공장.남포제분공장 등이 있다. 최임봉 연구위원은 "북한의 생필품 경공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개성공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훨씬 진전되면 일부 중공업에도 기술지원이 필요하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핵 문제가 상당한 진전을 보일 경우 김책제철소나 흥남비료공장 등에 우리 측 관련공장의 기술진이 개보수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92년에 비공식적으로 포항제철 기술진이 김책제철소를 방문, 기술지도를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통일문화연구소 이동현 전문위원, 정창현.고수석.정용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