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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28.한솔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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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솔그룹엔 회장이 없다.기조실이나 비서실도 없다.한솔은 대주주인 이인희(李仁熙.67)고문이 이끌고 있다.李고문은 삼성그룹고(故)이병철(李秉喆)회장의 장녀.30대그룹 오너중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李고문은 그러나 일상적 경영엔 거 의 간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그녀가 맡고 있는 공식 직함은 모기업인 한솔제지의 비상근이사와 한솔문화재단 이사장뿐이다.
실제 그룹 살림은 전문경영인에게 철저히 위임돼 있다.계열사의결재란에도 李고문의 서명칸은 없다.각사 사장이 결재라인의 끝이다. 한솔은 「그룹」이라는 표현도 올해초 30대그룹에 진입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여기엔 『자찬은 절대 하지말자』는 오너의뜻이 반영돼 있다.
한솔은 자산기준 지난해 재계 31위에서 올해 22위로 도약했다. 6월엔 차세대산업인 개인휴대통신(PCS)의 신규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91년 11월 삼성과의 그룹분리선언이후 5년만이다.삼성과 법적.실질적으로 완전 분리된 93년말을 기준으로 하면 3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재계의 새 강자로 떠오 르고 있는 것이다.
91~95년 총자산은 5천억원에서 3조원으로,그룹 매출은 3천4백억원에서 2조원으로,종업원수는 1천5백명에서 5천7백명으로 늘었다.올해 매출은 3조원에 이를 전망.
한솔은 현재 주력인 제지.정보통신외에도 금융.건설.정밀화학등20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65년 창립된 모기업인 전주제지와 병원.부동산관리등을 맡아온 한솔흥진등 2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91년이후 신설 또는 인수한 회사들이다.
한솔맨들은 이같은 급신장 비결을 그룹 모토인 「청년정신」에서찾는다.의사결정이 신속한 젊은 기업이라는 뜻이다.
李고문은 그룹 분리때 신라호텔과 고려병원 주식등을 삼성에 매각해 1천여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李고문은 이를 종자돈으로 신규 투자.인수에 나섰다.한솔은 이 때문에 계열사를 늘리는 과정에서도 자금난을 별로 겪지 않았다고 그룹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룹 전체의 부채비율은 93년 4백57%에서 95년 3백13%로 낮아졌다.은행돈으로 따지는 여신관리기준으로는 30대그룹에포함돼 있지 않다.「포기할 것은 미련없이 정리하고 새 사업은 과감하게 뛰어든다」는 한솔식 경영감각에 따른 것 이다.
경영 스타일도 「공격적」이다.주요 제조업체중 가장 먼저 주5일 근무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다른 기업들의 반발에 부닥쳐 시행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솔의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공정거래위로부터 신문용지 가격에 대한 담합 때문에 1백78억여원의 과징금처분을 받은 것.
회사측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의제기를 해놓은 상태다.
한솔은 삼성 인재사관학교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기업문화나 경영철학에도 삼성의 그것이 밑바닥에 깔려있다.그러나 인사.
자금등 경영측면에서는 완전 분리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는 아직 한솔이 삼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일부 오해가 있어 부담이 된다고 한다.
그룹 직원들은 『한솔은 자율경영이 가장 앞선 국내기업중 하나』라고 말한다.의사결정이 빠르고 기업인수나 신규사업 진출도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 전문경영인들의 심적 부담도 크다고 한다.
李고문은 회사엔 한달에 1~2번 정도만 나온다.그러나 李고문은 대형투자나 임원 인사는 철저히 챙긴다.
의전도 분명히 해 반드시 신임 임원들의 인사는 직접 받는다고한다.그밖의 사항들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
李고문은 근로자들의 작업복 디자인은 본인이 결정한다.그러나 대당 수백억원씩 하는 초지기(종이 만드는 기계)기종 선택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초지기같은 것은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므로 전문경영인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며 작업복은 복지와 관계돼 오너가 챙겨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한솔은 예술과 경영이 접목된 기업문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솔제지 전주공장등 주변 잔디밭에는 유명 조각품.미술품들이 전시돼 있다.한솔소유의 여주 골프장엔 헨리 무어의 진품이,한솔기술원엔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 작품이 진열돼 있다.
근로자 복지도 높이고 공장 환경도 질을 높여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것이다.한솔문화재단은 또 미술관.종이박물관 건립등을 추진중이다.
한솔은 그룹분리 당시 두가지 약속을 사원들에게 했다.첫째는 삼성과 보수를 맞춰준다.둘째는 삼성보다 복지수준은 뒤지지 않게해준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삼성에 들어왔지,전주제지에 들어왔느냐』는 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삼성그룹으로 입사한 우수한 인재가 이탈하지 않도록하기 위한 조치다.
한솔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사장단 회의로 매월 한차례씩 열린다.李고문이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나 부재시에는 구형우(具亨佑.54)한솔제지사장이 대신 좌장역할을 맡는다.
한솔은 기조실.비서실이 없는 대신 사장단회의 사무국(국장 金道淵부사장)이 있다.
올해초 30대그룹에 진입하면서 처음 만들었는데 이름에서 보듯기조실과는 개념이 다르다.통합적 기능이 약한 것이다.인원도 20명으로 제한했다.
한솔의 인적구조는 「삼성출신+α」다.주력은 과거의 전주제지를이끌어온 한솔맨,즉 삼성 출신들이다.여기에 신규사업 진출.기존업체 인수등을 통해 영입한 인력이 다른 한 갈래를 이룬다.계열사의 대표이사는 사장외에 부사장.전무.상무까지 다양하다.단기간에 사업이 확대된 때문이다.
구형우 사장은 국내 제지업계의 대표주자격이자 한솔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이다.전주제지 공채2기(삼성그룹 공채8기)인 그는 28년간 줄곧 제지업에만 몸담아왔다.
매너가 좋아 「영국 신사」란 별명을 듣는다.매사에 합리적이고합의를 존중하는 스타일.한양대 화공과를 졸업한뒤 공장장과 연구개발 부서를 거친 「기술자 출신」임을 긍지로 여긴다.
정용문(鄭溶文.62)한솔PCS사장도 삼성출신이다.
鄭사장은 그룹에는 신참자이나 제지와 함께 한솔의 양대기둥이 된 정보통신 사업의 수장을 맡을 정도로 그룹내 비중이 크다.전자공학도 출신으로 89년까지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대표를 지냈다.삼성전자가 가전.통신.반도체 3분야를 통합할때 사직하고 미국에 머물던중 한솔에 스카우트됐다.
소진화(蘇鎭和.57)한솔텔레컴 사장과 조동완(趙東完.52)한솔전자 대표는 鄭사장과 함께 그룹의 정보통신사업군(群)을 이루는 트리오 경영인이다.한솔텔레컴은 인터네트 서비스등 PC통신 사업체.한솔전자는 PCS통신 단말기와 멀티미디어 주변기기등 하드웨어 제조업체다.
蘇사장은 경기고 졸업후 미국에 유학해 전산학 박사학위를 딴 해외파.미국 보스턴에서 정보분야 벤처비즈니스에 성공한뒤 호주국영 통신업체의 한국법인 대표를 지냈다.
趙대표는 삼성전관에서 미주 영업본부장을 지내다 지난해 한솔이멀티미디어 업체인 한국마벨을 인수한뒤 이 회사 책임자로 스카우트된 전문경영인이다.
이구용(李九鎔.57)한솔종합건설 사장은 두산.태평양건설등을 거쳐 영입된 전문경영인.
그룹내 원로급에 속하는 한동우(韓東羽.61)종금 사장은 재무부 국고국장을,조성운(趙誠雲.65)한솔개발 대표는 춘천시장을 지낸 관리출신이다.
나원길(羅元吉.57)한솔포렘 사장은 조림(造林)및 목재 사업을 수행하는 한솔제지 창업 공신.선우영석(鮮于永奭.52.한솔무역).강석주(姜錫周.52.한솔화학).이흥근(李興根.48.한솔파텍).김홍식(金洪植.48.한솔유통)대표등도 한솔의 터줏대감들이다. 김도연 사장단회의 사무국장겸 한솔창투 부사장은 그룹내 인사.재무분야 전문가다.
이인희 고문과 조운해(趙雲海)전고려병원 이사장 부부의 맏아들인 조동혁(趙東赫.46) 한솔흥진 사장은 일찍부터 고려병원 일등 부친쪽을 도왔다.동생인 조동만(趙東晩.43).조동길(趙東吉.41)한솔제지 부사장 형제도 그룹 경영에 적극 참여해왔다.
동만씨는 한솔이 PCS사업권을 따내는데 역할을 했으며 강원도원주일대에 대규모 복합 리조트타운 건설을 추진중이다.동길씨는 한솔에서 「제지산업의 세계화」를 짊어진 기수.미국 모건은행 서울지점에서 금융을 익힌뒤 형보다 빨리 87년 전 주제지 부장으로 한솔에 발을 디뎠다.
한솔은 「제2의 노키아」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제지업으로 출발해 정보통신으로 세계를 석권(현재 2위)한 핀란드의 이 기업을 한솔의 모델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력인 제지를 세계 10대기업으로 진입시키고 정보통신을 양대축으로 삼아 2001년까지 매출 10조원을 달성한다는 「한솔플랜2000」을 내걸었다.매년 40%이상 고속성장해야달성할 수 있는 규모다.
李고문은 아들 3형제중 장남에겐 금융을,차남은 정보통신을,3남에겐 제지사업을 맡겼거나 맡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2세는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으며 형제간 구획정리도 원칙적으론 끝낸 상태라고 볼 수 있다.한솔이 2세체제의 정착과 협력아래 그룹 목표를 순탄히 달성할지 재계의 관심이 되고 있다.
〈다음은 해태그룹편〉 민병관,이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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