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e칼럼

피노누아(Pinot Noir) 와인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봄직한 영화 사이드 웨이 (Side ways) 에서 이 포도품종을 사용한 와인에 대한 묘사가 제대로 보여진다. 영어강사였던 주인공 마일즈는 작가로서의 길도 함께 걸어간다. 어디에 빠지면 깊이 빠지는 그는 사람을 사귈 때 에도 마찬가지 이다. 쉽게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못하지만 일단 친구가 되면 오래간다. 잘 토라지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면 속이 깊은 그러한 스타일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는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사랑했다.

피노누아는 포도재배부터 시작하여 만들기 까지 그리고 심지어 마시는 순간 까지도 다루기가 힘든 포도품종이다.

피노누아는 섬세하고 예민하다. 포도껍질은 다른 품종에 비해 얇아 쉽게 터지며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데 태양에 약간이라도 오래 노출 되면 포도는 쉽게 타버린다. 토양에 따라, 수확되는 해의 일조량 심지어 만들어지는 와인메이커에 따라, 피노누아는 너무나도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된다. 그래서 인지 유명 와인메이커들 대부분이 가장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싶어하는 품종이 이 피노누아 이다.

심지어 와인을 보관할 때에도 피노누아는 민감하기에 잘 보관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변질해 버리기 때문이다. 와인 병을 오픈한 후에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특히 오래 숙성시킨 고급 피노누아 일수록, 오픈 후 최적의 마실 시간을 미리 가늠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피노누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와인고수들이 주로 마시게 되는 꽤 비싼 가격의 이해하기 어려운 피노누아 일수도 있겠다.

즉, 피노누아는 이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와인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피노누아는 다른 포도품종들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포도품종들은 각각의 독특한 특징으로 서로 잘 어우러져 블랜딩하여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을 내지만 피노누아는 자체가 워낙 복합적이고 섬세하기에 다른 품종이랑 섞이면 자신의 오묘하고 복합적인 특색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꽤 내성적이고 좋은 와인으로서의 훌륭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혹은 와인메이커의 스타일에 따라 그 표현방법은 너무나도 달라진다.

훌륭한 피노누아는 입안에서 머무는 감동이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아로마는 잘 익은 포도의 농후함과 드물게 페퍼민트 혹은 블랙체리의 향, 잘 익은 토마토, 버섯, 그리고 헛간의 향기가 피노누아에서 표현이 된다. 이는 풀 바디 하면서도 풍부하나 무겁지는 않으면서도 높은 알코올을 지니고 있으며 신맛이 강하거나 타닉 하지도 않으면서 복합적으로 깔려있는 향기는 섬세하다. 가장 두드러진 높은 품질의 피노누아는 부드럽고, 벨벳 같으며 젖은 실크와 같기도 하다. 피노는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는 와인은 아니다. 이 와인의 최고의 음용 시기는 생산된 해에서부터 5-8년 정도가 최고이다.

피노누아의 섬세한 질감이 있기에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로스트 비프와도 잘 어울린다. 꼬꼬뱅 (Coq au Vin – 레드와인에 요리된 프랑스 풍 닭 요리)과 같은 불란서 요리와 함께 하면 훌륭하다. 기타 주요 메인 요리로는 로스트 양고기류 와 오리요리 그리고 연어, 상어, 참치 등과 같은 육류에 가까운 강한 맛의 붉은색 생선 류가 어울린다.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맛이 있는 요리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며 때론 약간 매운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피노누아로 만들어진 최상급의 와인을 꼽으라면 로마네 꽁띠 (Romanee Conti)이다. 아마도 이 와인은 와인애호가들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맛보고 싶어 하는 와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와인은 이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와인이다. 국내에서 적어도 1300만원 이상은 주어야 맛 볼 수 있는 와인이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대에서도 맛있는 피노누아 와인들은 많기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나 칠레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도 꽤 맛있는 피노누아로 만든 와인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소개된 아카시아 피노누아(Acacia Pinot Noir)는 4만원 대에서 저렴한 가격대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카네르스 지역의 와인이다. 써던 씨스터스 리저브 피노 누아(Southern Sisters Reserve Pinot Noir)는 호주 산 와인으로 꽤 고급스러운 우아함을 강조했다. 뉴질랜드는 매우 우수한 피노누아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와인을 꼽으라면 끌로앙리(Clos Henri)의 프랑스풍 고급 피노누아를 즐길 수 있다. 프랑스의 끌로 데 람브레이 그랑 크뤼(Clos des Lambrays Grand Cru) 혹은 페블리 샹베르땡 끌로 드 베즈 그랑 크뤼(Faiveley Chambertin Clos de Beze Grand Cru)는 또 다른 프랑스 풍 피노누아의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칠레산 코노 수르 오씨오 피노누아(Cono Sur OCIO Pinot Noir) 혹은 J 피노 누아(J Pinot Noir)는 뒤에 남는 감칠 맛과 함께 성격 좋은 피노누아를 만나는 느낌이다.

최성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