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드럭 밴드』 실황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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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홍익대입구 근처의 후미진 지하실(펑크록 카페 「드럭」)에서 놀던 「드럭 밴드」가 지상으로 올라와 공연을 했다.지난 8월27일부터 29일까지.신촌의 라이브 극장 「벗」에 옐로우 키친.크라잉 너츠.갈매기.리본 핑크.벤치.위퍼등의 밴드가 섰다.처음 드럭에 설 때보다 연주실력도 많이 늘었다.하지만 이들은여전히 「프로」는 아니다.잘하지 못해서 프로가 아닌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태도로써 이들은 프로가 아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록 음악을 하게 된 계기,그리고 함께 하고있는 음악의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심지어 우발적이기까지 하다.
결정(決定)돼 있는 것은 없고 해나가는 과정만 있다.그 과정의표시인 결정(結晶)들이 매 순간 탄생한다.그러 나 그 결정체 역시 결정되지 않은 어떤 것이다.드럭 밴드들은 음악을 「추구」하지 않는다.오히려 그것을 거부한다.그러나 그 순간에 거부의 태도가 빚어낸 순간순간의 음악이 있다.
그 자발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순간의 공간을 드럭의 모든 성원들이 즐긴다.저마다 나름대로 그 상징을 이루는 요소들이 되어 어떤 사람은 「드럭 밴드」로,어떤 사람은 「드럭 애들」로 참여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랬다.옐로우 키친의 무대에선 갈매기의 드러머가 드럼을 쳐주고,리본 핑크의 무대에선 갈매기의 기타리스트가 도와주고,크라잉 너츠가 빨간 머리를 도와주고,빨간 머리는또 누굴 도와주고….그들은 순환하는 하나의 물결과도 같다.몇 개의 단편 영화 모음에 동일한 등장인물들이 출연함으로써 작품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생긴다.그러면서도각 밴드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옐로우 키친은 사이키델릭한 전위 록이고,크라잉 너츠는 강력하고 단 순한 펑크다.
그러나 그 「차이」는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드럭 밴드의 전체 분위기를 이루는 요소이기도 하다.이들은 밴드의 「개별성」이라는개념을 허문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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