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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과 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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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인가. 표현이 약간씩 다를 수는 있지만 본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정의와 질서가 유지되고, 정치적으로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며, 경제적으로는 번영과 발전이 이룩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그러면 정의가 항상 질서와 같이 가는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전쟁이 한창인 이라크를 보자. 이라크 전쟁은 정의의 전쟁인 것처럼 시작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 의혹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가혹한 독재통치. 인권유린 등을 명분삼아 이라크를 침공했다. 영토 주권을 내세운 유엔과 국제사회의 반대가 있었지만 미국은 '인도주의적 대의를 제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신장을 외쳤던 명분도 사라지고 있다. '아부 그라이브'감옥사건 외에도 미군은 팔루자와 기타 전투현장에서 가혹한 보복전을 감행해 인권단체들로부터 비난을 사오고 있다.

그러니 '영토적 주권을 유린하더라도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도덕적 대의를 신장하는 것이라면 타당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은 이제 사실상 궤변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여기서 교훈을 얻어 유일 패권국가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금도와 윤리를 지킬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국익 추구라는 또 다른 목적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는 현재 중국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겉으로는 경제적 다극체제 속에서 상호 의존이 증대하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역사적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한.중.일 3국에 민족주의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북한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사회주의.공산독재의 힘이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렇게 조율되지 못하고 덜컹거리는 가치와 윤리의 충돌 속에서 한국은 살아가야 한다. 한.미동맹의 가치가 50년을 지켜왔지만 미래가 얼마나 과거를 닮을 것이고, 돌아갈 우리의 미래(back to the future) 가치가 과거 50년의 가치와 함께 여전히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국익과 동맹의 효율적 융합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이는 '중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더 우리에게 비중있는 국가냐'는 질문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