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명화에 빠진 듯 … 앙투아네트의 ‘작은 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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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함의 대명사로 통하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왕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궁전’이라는 뜻의 ‘프티 트리아농’이 있다. 18세기 중반, 어린 나이에 적국에 시집와 외로움 속에서 살다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궁보다 더 사랑했던 곳이다. 앙투아네트가 강제 이주당한 후 200년 동안 방치됐던 ‘작은 궁전’이 완전히 복원돼 10월 2일 대중에 공개된다. 프티 트리아농은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낭만적인 로코코 양식에 대한 반발로 그리스·로마의 웅장하고 절제된 양식을 되찾자는 움직임) 건축 양식에 왕비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가미된 공간이다. 카드게임을 하던 왕비의 서재, 당구실 등 당시 용도에 맞게 방들이 다시 꾸며졌고, 이리저리 흩어졌던 가구들을 찾아왔고, 분실된 물품은 다시 만들었다.

 지난달 24일 오전 9시(현지시간), 프티 트리아농에 전 세계 400여 명의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일반 공개에 앞서 기자들에게 먼저 공개한 것이다.

#앙투아네트만의 공간

화려한 천장 벽화와 금색 장식으로 인해 눈이 아찔해지는 왕궁과 달리 프티 트리아농은 3개 메인층과 중이층(보통의 이층보다는 낮고 단층보다는 높게 지은 이층)으로 구성된 아담한 건물이다. 베르사유 국유지 지방자치단체장인 장 자크 에일라곤은 “프티 트리아농은 신고전주의 스타일과 앙투아네트의 취향이 잘 버무려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엄격한 왕실 에티켓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왕비는 소박하고 조용한 프티 트리아농의 매력에 빠졌고, 나중엔 공식 행사까지 불참한 채 이곳에 머물렀다.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진 그녀는 트리아농 궁의 정원에 농가를 만들고 오리와 닭·소를 키웠다.

# 칩거한 왕비는 국민과 멀어지고

프티 트리아농 궁에는 왕비와 친한 소수 귀족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당구와 카드 게임을 즐겼고, 왕비가 방에 들어와도 게임을 멈추지 않는 등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트리아농에 틀어박혀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한 왕비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을 적대시하는 왕비’라는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나돌았다. 결국 1789년 10월 5일 가족과 함께 파리 튈르리 궁으로 강제 이주당한 그녀는 다시는 프티 트리아농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프티 트리아농의 물품들은 분실됐고, 훼손됐다. 나폴레옹 1세와 루이 필립 등이 몇 차례에 걸쳐 프티 트리아농을 재정비했으나 오늘날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었다.

프티 트리아농 2층에 복원된 메인 다이닝룸. 두 점의 큰 거울과 샹들리에, 빨간 커튼과 빨간 의자의 조화가 눈에 띈다. [브레게 제공] [브레게 제공]

#참나무의 인연이 궁전 복원사업으로

프티 트리아농의 복원 사업은 프랑스 문화관광부의 후원과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인 ‘브레게’의 재정 지원으로 이뤄졌다. 2003년 여름, 브레게의 니콜라스 하이에크 회장은 신문을 읽던 중 베르사유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앙투아네트 참나무의 수명이 다해 곧 베어질 예정이라는 내용을 발견한다. 1681년 심어진 이 참나무는 1999년 폭풍을 맞고도 목숨을 유지해 왔었다.

루이 16세 시절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계를 제작했던 브레게는 마침 똑같은 시계를 복원하는 중이었고, 하이에크 회장은 그 참나무를 구입해 시계의 박스로 재탄생시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참나무는 3000조각으로 이루어진 앙투아네트 시계 상자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이 인연으로 브레게는 프티 트리아농의 복원사업을 재정 지원하게 된다. 브레게가 지원한 돈은 대략 500만 유로(약 85억원)다.

#되살아난 앙투아네트의 체취

최대한 원래 모습에 가깝게 되돌린다는 목표 아래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경비실·왕비의 서재·당구실 등 원래 방의 역할을 재건하고 판자·휘장 장식·조명 등의 설비를 완비했다. 층계와 난간이 원래 모습대로 꾸며졌고 각 방에 안전장치 기준을 갖춘 전기·전선 장치와 콘센트도 설치됐다. 왕궁 내에 흩어져 있던 가구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동안 관광객들은 2층 전체와 1·3층 각 1개씩의 방만 볼 수 있었으나 2일부터는 1·2·중이층·3층에 복원된 모든 방을 볼 수 있다. 단, 중이층과 3층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만 둘러볼 수 있다.

루이 15세가 주문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 완성되지 못했던 ‘날아다니는 테이블(flying table)’에 대한 설명도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 테이블은 1층에 있는 두 개의 테이블이 줄과 도르래로 연결돼 2층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된 것이다. 프티 트리아농 정원에 있는 프랑스식 전시관과 전망대도 함께 복원됐다.

베르사유(프랑스)=송지혜 기자

◆프티 트리아농=부르봉 왕가 말기 베르사유를 풍미했던 여인들이 모두 거쳐간 궁전이다. 루이 15세가 1762~68년 연인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었다. 부인이 죽은 후 루이 15세의 또 다른 연인인 뒤바리 부인에게 줬으나 루이 16세는 이것을 다시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결혼선물로 줬다. 이때 앙투아네트는 다이아몬드 530개가 박힌 열쇠를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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