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동 교수의 '세계 경제의 핵 화교' ③] 만만디와 관시 네트워크로 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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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들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모국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 수 많은 고난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이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어떤 기질(器質)을 가졌는가를 살펴야 알 수 있는 문제다.

화교들은 어떤 기질을 가졌을까? 남의 나라에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분명히 남의 나라이지만 차이나타운은 바로 중국의 모습이다.

기질이라는 말은 타고난 성질을 의미한다. 옛말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해외에서 생활하고 외국 국적을 얻었을지라도, 화교들에게는 중국인으로서의 기질이 아직도 살아 있다. 화교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 해외무역의 역사를 알아야 했듯이 화교의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인의 기질을 이해해야 한다.

흔히 중국 사람을 표현할 때 만만디(慢慢的)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만만디는 ‘천천히’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만만디는 중국인의 느긋느긋한 성격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국어대사전에는 만만디를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느림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을 정도로 알려진 관용어이다.

물론 모든 중국 사람이 만만디인 것은 아니다. 지방마다 성향도 다르고 근대화가 빠르게 진척됨에 따라 현대 중국인에게는 보편적이라고 말하기 힘든 특성이다.

하지만 이 만만디는 중국 문화에 뿌리 깊이 내려 있다.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은 만저우(慢走)로 ‘천천히 가세요’라는 의미이고 식당이나 식사 자리에서 요리를 내면서 하는 말은 만만츠(慢慢吃)로 ‘천천히 드세요’라는 의미이다.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해 사과할 때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메이관시 만만라이(沒關系 慢慢來)'라며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 만만디의 기질 자체만을 두고 이것이 좋다고만 할 수도, 또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특히 중국의 사회주의 사회 안에서의 생활과, 또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중국의 현 세태 속에서는 오히려 만만디가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만만디는 화교들이 해외 각지에서 살아 남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화교들은 이 만만디를 바탕으로 한 기질, 곧 근면성과 인내성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화교들에게는 모국에서 살 때 이상의 고난이 닥쳐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세계 각국에서 살아남아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고난이 닥쳐 온다고 해서 금방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느긋하게, 그러면서도 근면하게 견디어, 어떤 지역에서도 적응해 낸 것이다.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 당시 만든 홍위병이라는 소년단체가 사람들을 박해함으로써 관시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앙포토]

끈끈한 대인관계…든든한 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관시(關係)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얼마나 인간 관계를 잘 쌓았는가의 여부가 성공의 길과 결부된다고 말한다. 또 서점에서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책들이 베스트 셀러로 많이 팔리고 있다. 한자의 사람 인(人)이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이듯이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중국인 역시 이 인간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아니 중국인들의 인간관계, 즉 관시(關係)는 보통의 인간관계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관시에 대해 오해하는 일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관시를 우리나라의 ‘연줄’ 혹은 ‘빽(Background)’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비슷하기는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관시가 나온 배경을 알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관시라는 말이 관용어로써 처음 쓰이게 된 것은 문화대혁명 때의 일이다. 당시 홍위병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박해를 가했는데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나서서 사람을 구하던 관계가 바로 관시의 원조라고 한다. 그래서 관시는 죽음을 무릅쓰고 상대방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그 의미가 점점 변해서 현재 쓰이는 관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심각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성의를 다해 돕는 깊은 관계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연줄’과 ‘빽’에서 느껴지는 권력, 혹은 그와 비슷한 힘이 바탕이 되는 말과는 다른 것이다.

이 관시가 나온 배경 때문인지 중국인들의 인간관계를 보면 우리와는 다른 독특함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관시가 없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냉랭하다. 바로 옆에서 누가 얼어 죽어가고 있어도 모른 척할 듯한 냉랭함이다. 하지만 관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춥기는커녕 재채기만 해도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줄 기세로 잘해 준다. 물론 이것도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만만디(慢慢的)와 같이 기질이란 시대에 흐름에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지만, 중국인의 관시는 사라져가는 만만디와는 달리 여전히 그 끈끈한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관시라고 보고, 관시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독특한 기질인 이 관시는 만만디와 마찬가지로 화교들이 타국에서 적응하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중요한 기질이다. 아니 어쩌면 만만디 이상의 힘으로 화교들을 지탱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화교들은 고난을 겪을수록 이 관시를 돈독히 하고 관시가 서로 얽히고 설킨 '관시왕(關係網)', 즉 관계망을 형성했다. 화교들은 이 관시왕을 통해 서로 상부상조했다. 또 자신들만의 관시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과 형성된 관시가 현지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리고 또 이 화교들의 관시왕은 ‘화교 네트워크’로 발전하게 된다.

글=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 이승훈 연구원(www.uic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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