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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드라마 ‘엄뿔’ 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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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 시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물어 큰 반향을 일으킨 KBS 2TV ‘엄마는 뿔났다’. 한자(김혜자)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KBS 제공]

 방영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엄마가 뿔났다’에 대해 ‘김수현식 가족극의 재탕’이라고 심드렁해 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목욕탕집 남자들’(1995년)을 빼닮은 3대 이상 대가족을 기본으로 한 줄거리며, 이순재·강부자·김혜자·김상중 등 ‘김수현 사단’으로 이뤄진 출연진 때문이었다. 정을영 PD 역시 ‘부모님 전상서’(2004년),‘내 남자의 여자’(2007년)에서 호흡을 맞춘 오랜 파트너였다. 몇 번을 제외하고 6월까지 20%대 초·중반에 머무른 시청률은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허나 김수현은 역시 김수현, 명불허전이었다. “40여 년간 가족에 봉사했으니 1년 휴가를 달라”는 엄마 한자(김혜자)의 가출선언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한자의 돌발 행동은 주부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시청률은 단숨에 35%까지 치솟았다. 강준만 전북대(신문방송학과)교수는 ‘방송문화’ 9월호에서 김수현을 ‘일상적 감수성의 마술사’라 칭하며 “한국에서 엄마도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기 위한 최상의 텍스트(교재)는 ‘엄뿔’”이라고 평가했다.

할아버지(이순재)와 안 여사(전양자)의 로맨스 그레이, 이혼남 종원(류진)과 결혼한 영수(신은경)와 전처 딸 소라(조수민)의 기묘한 동거 등 김수현의 강펀치는 기다렸다는 듯 이어졌다. 특히 할아버지와 안 여사의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관계는 황혼연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지금껏 우리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이달 21일에는 자체 최고 시청률인 40.4%를 기록, ‘국민 드라마’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39.7%, 평균 시청률은 28.1%였다. 2000년대 이후 발표된 김수현 드라마 중 최고 기록이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성·연령별로는 40대 여성이 가장 많이 봤고, 그 다음이 30대, 60대 여성이었다.

‘엄뿔’은 KBS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여러 차례 호평을 받았다. 예능·드라마 분과 옥선희 위원은 “앞으로도 ‘엄뿔’처럼 중·노년의 사랑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드라마를 계속 TV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뿔’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시청률 이상이다. 가사노동의 가치, 이혼과 재혼에 얽힌 낳은 정과 기른 정 문제, 노년의 사랑 등 우리 시대 가족이 안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미래 지향적 발언은 드라마가 현실에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이다. TV 칼럼니스트 이윤정씨는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작가는 여럿 있지만, 고령화 사회나 이혼율 급증 등 시대의 변화를 작품 안에 받아들여 발언하는 작가는 김수현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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