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식량과 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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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몇달동안 한국 언론에는 한국정부가 식용쌀의 추가수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등 식량문제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다.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식량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접근방법이 나이브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이는 필자가 몇달전 한국 방문시 이 분야에 대한 정부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탈냉전후 나타나기 시작한 신민족주의 등 최근 국제정세의 흐름을 살펴보면 식량무기화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이다.세계 최대의 식량대국인 미국도 전반적인 보수우익화와 미국 제일주의로 상징되는민족주의 바람으로 자국이익과 외교전략상의 목표달 성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곡물을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70년대 중동국가들에 의한 석유무기화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곡물수출국에 의한 식량무기화는 식량이라는 특수성에 비춰 그 위력은 석유무기화와는 비교할 수 없다.
식량무기화가 현실화되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식량을 확보할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만약 농산물거래 등이 순수 국제통상의 문제로만 취급된다면 설사 국제시장에서 곡물가격이 오른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력이 감당할 수 있는한 별 문제가 되지않는다.그러나 식량위기가 가격의 위기를 넘어 개개 국가의 이익과 국제정치상의 목표달성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특히 식량의 상당량을 외국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식량문제가 국가안보차원의 현안으로 등장할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우리나라를 보면 우리사회는 국내 정치문제등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이슈들에 국력의 대부분을 소진하고있어 그런지 21세기 국제사회의 새로운 질서형성과정에서 민족생존과 국가주권 수호 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식량문제 등에대한 대처가 소홀한 것같다.
우리의 식량문제는 이제 농업내적인 수단과 방법만으로는 근본적해결이 어렵고,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산업정책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한국은 지난 한세대동안 국가의 모든 목표와 우선순위를 중화학공업으로 상징되는 산업화에 뒀다.그 덕 에 우리는 기적에 가까운 경제개발신화를 창조했다.그러나 농업 등 1차산업및기초산업은 퇴보했고,이로 인해 산업간의 구조적 불균형을 심화시켜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농업이 사양(斜陽)산업이라는 관측이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오히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농업은 앞으로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부상,21세기의 산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농업육성을 포함한 새로운 부국강병책으로 다음세기의 국가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이를 위해선 여러가지 구체적대안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우선 식량자원의 해외생산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이 경우 국제통상외교상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민간중심으로 추진하고 완전한 현지화를 이뤄야 한다.70년대와 80년대 건설업체의 해외진출을 지원했듯이 정부는 식량생산 기지개발을위한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그일환으로 전국의 농고.농대 출신들을 대규모 해외기업영농에 투신할 수 있도록 과거 해외건설기술자들에게 부여했던 병역특혜 등의조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농업은 리드타임(lead time)이 길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가 닥치기 전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안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한시라도 앞서 마련하고 즉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식량문제는 현재 한국정부가 접근하는 것처럼 단순히 산술적.경제적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된다.이 모든 것의 성공여부는 국가정책 결정권자의 식량.농업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의지에 달려있음은물론이다.
이충양 피츠버그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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