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누가 이겨도 한국엔 새로운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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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35면

미국은 과연 버락 오바마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할 것인가. 아니면 존 매케인이 공화당의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것인가. 11월 4일 미 대선까지는 이제 5주 남짓 남았다. 금융위기가 격화되자 공화당의 여성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의 등장으로 고전하던 오바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시 우위를 점하며 매케인을 따돌리고 있다. 미 대선에서 경제 문제는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미시시피대에서 열린 대선 후보 간 첫 번째 TV토론은 외교·안보 분야가 예정된 주제였으나 90분간의 토론 시간 중 경제 문제가 40분을 차지할 정도로 유권자의 관심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오바마는 금융위기의 책임을 지난 8년간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정(失政) 탓이라고 물고 늘어지면서 공화당 후보 매케인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맞서 매케인은 초당적인 위기 대응을 강조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오바마의 일천한 경륜으로는 부족하다고 반격했다.

경기침체와 경제난은 집권당에 악재다. 동서고금의 선거 역사가 증명한다. 1992년 아칸소 주지사에 불과했던 정치 신인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97년 외환위기 와중에서 치러진 한국 대선에서 집권당은 정권 연장에 실패했다. 부시 행정부의 긴급구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금융 시장의 위기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공화당은 정권을 내놓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매케인과 오바마 가운데 누가 내년 1월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그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 속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게 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당분간 미 경제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은 분명하다. 당분간 미국은 국내 경제 문제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미 경제가 이전과 같은 번영의 시대로 돌아갈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의 무분별한 팽창을 견제하는 보다 강력된 규제 조치가 도입되고, 시장을 우선시하던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확대된 개입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에 쇠퇴할 것이다. 미국의 이런 변신은 냉전 체제 몰락 이후 세계적인 금융 자유화를 재촉하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약화됨을 뜻한다. 전 세계는 당분간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에 지혜를 짜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제경제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국이라는 유일한 초강대국만 존재하던 시대와 결별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과거와 다른 세계 전략을 구사할 것이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는 상대 국가에 더 많은 비용 분담 요구가 들어 있을 것이다. 세계적 갈등의 현장에서 미 주도의 적극적인 개입보다 다자 외교의 틀을 활용하는 상황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런 상황 변화는 한국에 새로운 도전 요인을 의미한다. 미 경제의 침체는 한국 경제에 당장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중국 등 개도국에서의 투자를 통한 대미 우회 수출마저 먹구름이 끼고 있다. 미국 시장의 수요 침체는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해 이미 악재가 잔뜩 낀 중국 경제의 앞길을 더욱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극심한 침체는 국내 보호주의 성향을 부추겨 미 의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가로막고 있다.

미 대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한국은 세계 경제의 판도와 미국의 미래에 대한 가정(假定)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시점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쇠락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세계 전략 핵심에는 한·미 동맹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이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을 축으로 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국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유럽연합(EU), 호주, 중앙아시아, 중동 산유국, 아프리카 등을 외교·안보, 경제, 발전 원조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물망처럼 엮는 안보·경제 비전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미 대선은 한국으로 하여금 외교·안보와 경제 분야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생존·번영 전략을 다시 한번 점검할 때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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