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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외화 조달, 급한 불은 껐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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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가 외화 자금시장에 100억 달러를 풀기로 한 것은 금융회사의 외화조달 사정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 입에서 “현재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1주일짜리 론(차입)도 없어져 모두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달러 차입)로 거래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원 방식은 조금 복잡하다. 은행에 직접 달러를 대출해 주거나, 예금으로 넣어 주는 대신 은행이 가지고 있는 원화와 한국은행의 달러(외환보유액)를 일정 기간 서로 바꿔 갖고 있도록 하는 방법(스와프 거래)을 택했다. 일단 시간을 벌자는 뜻이다. 당장 지금의 고비를 넘기면 외화조달이 풀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미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이런 방식을 사용해 간접적으로 은행에 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뒤 스와프 시장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져 거의 정상가동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기획재정부가 스와프 시장에 외평기금을 풀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이 일정 기간 감소한다는 점이다. 한은이 달러를 원화로 바꿔 가지고 있는 동안 외환보유액에선 그만큼의 액수가 빠진다. 물론 만기엔 한은이 받아둔 원화가 다시 달러로 바뀌므로 외환보유액이 원상태로 돌아간다. 다만 그러기 이전에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는 사실 자체가 심리적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한은 모두 예민한 반응들이다. 어쨌든 이날 정부의 달러 투입 계획은 시장에 적잖은 효과를 냈다. 이날 외환 스와프 시장에서 달러를 빌릴 때 주는 가산금리가 전날보다 1.56%포인트 떨어진 3.28%를 기록했다. 가산금리는 리먼의 파산 신청 이후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해 23일엔 10%까지 치솟았다. 리먼 사태 이후 9%까지 치솟았던 오버나이트 금리도 이날 2.8%로 낮아졌다.

그러나 은행들은 스와프 시장에서의 지원만으론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산업은행 김영진 머니마켓팀장은 “신용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단기 외화 차입시장에선 아직까지 누구도 달러를 빌려 주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더욱 노골적인 지원 요구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이 은행에 대한 직접 대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은행에 달러를 직접 대출하는 방안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달러를 빌려간 은행의 신용도가 급격히 떨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은행 양동우 자금부장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실제 집행돼야만 시장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외환 스와프(Swap)=다른 통화를 서로 바꿔 갖고 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원래대로 교환하는 거래. 원화는 있는데 달러가 부족한 은행들에 한은이 원화를 받고 달러를 공급해 주자는 게 정부 계획이다. 원화와 달러화를 교환하므로 대출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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