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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정상 중남미 순방외교 경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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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연의 일치인가,일본의 의도적 김빼기 작전인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중남미순방을 앞두고 정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가 한 발 앞서 같은 지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 총리는 오는 20일부터 28일까지 멕시코.칠레.브라질.페루.코스타리카등 5개국을 순방한다.金대통령의 「지평선 행사」는 다음달 3일 과테말라를 시작으로 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을 거쳐 14일 페루에서 끝난다.이 가운데 칠레. 브라질.페루등 3개국은 아예 겹친다.순방기간중 중미정상들과 합동정상회담을갖는 것도 똑같다.열흘여 간격으로 한.일 두 나라 정상이 거의같은 지역을 도는 셈이다.
중남미순방을 먼저 추진한 쪽은 한국이다.이미 작년말 96년 정상외교 대상지역으로 중남미를 점찍어 놓고 올초부터 당사국과 협의를 시작해 일찌감치 일정을 잡아 놓았다.
일본정부는 지난 6월에야 하시모토 총리의 중남미순방 계획수립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뒤늦게 뛰어든 일본에 오히려 선수를 빼앗긴 꼴이 됐다.도쿄(東京)외교가에서 우연이 아닌,이해하기 힘든 「외교적인 사고」라고 꼬집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당연히 불쾌한 심정이다.하시모토 총리의 순방계획이 알려지자 정부는 그 의도에 상당히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아니면 일부러 한국의 중남미 접근노력에 재를 뿌릴 목적으로 서둘러 순방일정을 마 련한 것인지그 진의를 몰라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그렇다고 따져 물을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속으로 앓는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시모토 총리의 순방목적이 점차 뚜렷해지면서 「우연의일치」로 돌리고 의연히 대처하는 쪽으로 청와대와 정부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내달말 유엔총회를 앞두고 안보리 개편문제에 관한 중남미국가들의 지지확보가 일본총리의 가장 큰 순방목적인 것으로 간접 확인됐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하시모토 총리는 순방기간중 상당액의공적개발원조(ODA) 제공을 약속할 계획인 것으 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정상의 중남미순방은 이번이 처음이다.경제협력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비교상대가 되지 못한다.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투자진출과 각종 원조제공을 통해 중남미에 상당히 공을 들여 왔다.중남미 당사국들 입장에서 한국보다 일본을 먼저 생각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하시모토 총리의 순방이 실무성격의 공식 방문인데 비해 金대통령의 방문은 전시적(展示的) 성격이 강한 국빈방문이다.정부 관계자들은 『방문의 성격과 목적이 서로 다른 만큼 양국 정상의 순방외교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니냐』 며 더 이상의 비화(飛火)를 경계하고 있다.
배명복 기자 도쿄=이철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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