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커피 맛, 카페 멋에 흠뻑 빠졌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본 ‘후회할 거라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라면 절대 후회하지 말라’는 구절이 떠올랐어요. 그가 들었다는 ‘가슴으로부터 나를 부르는 먼 북소리’가 제 귓가에도 올리고 있더군요. 그래서 떠났습니다.”

1년 넘게 도쿄·오사카·교토의 구석구석에 다니며 일본의 커피와 카페 문화를 체험한 임윤정(29·사진)씨의 말이다. 광고회사 조감독으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먼 북소리’에 이끌려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2006년 1월의 일이다. 여권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찍혀 있었다. 외국에서 일하면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이 비자는 젊은이만의 특권. 그가 배우려고 한 것은 커피였다.

“한국에선 친구들과 카페를 많이 돌아다녔지만 커피 맛도 제대로 모르고 마셨어요. ‘검은 악마’로 불리는 그 따뜻하고 향긋한 액체 속에 뭔가 담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발 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도쿄 카페 ‘모이’의 주인 이와마 요스케에게 편지를 썼다. 커피를 공부하며 일하고 싶은데 아르바이트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주인은 “여기는 커피 마스터가 혼자서 하는 작은 가게로, 규모가 너무 작아 일할 사람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라는 답장을 써서 보내왔다.

이와마는 반평생 커피를 연구해온 사람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됐다. 임씨의 일본 체류는 커피 공부와 카페 순례로 이어졌다. 이와마를 통해 원두가게 그라우베에서 주인 카노가 매달 여는 커피 교실에 참가하게 됐다. 뜻도 모르는 ‘내 이름은 김삼순’ ‘파리의 연인’ 주제곡을 흥얼거리며 가사 해석을 부탁할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카노는 단골손님들과 함께 그의 순례 길잡이가 됐다. 이들의 소개로 맛이 기가 막히다거나, 분위기가 괜찮다는 도쿄의 카페를 찾아다니게 됐다. 내친김에 도쿄가 있는 간토 지역과는 입맛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까지 거의 모든 행동거지가 다르다는 오사카· 교토의 카페문화까지 섭렵하게 됐다.

일본에서 그는 개성 있는 카페들을 수없이 발견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고집스러운 주인들. 아흔이 넘은 창업주가 앉아있는 70년 된 가게 등등…. 커피의 향과 맛, 그리고 카페의 아우라가 주인과 닮아 있었다. 주소도, 간판도, 영업시간도 따로 없이 주인 혼자서 파트타임으로 카페를 운영하며 자기만의 커피 맛을 추구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그가 만난 커피 마스터들은 한결같이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일본에서 맛의 고장으로 불리는 삿포로 출신의 커피마스터는 “도쿄에 왔더니 맛있는 커피가 없기에 원두를 내가 직접 볶아 제대로 된 커피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게를 열었다. 직접 만든 빵이나 케이크는 물론, 카레라이스나 가정식 백반을 비롯한 식사를 제공하는 일본만의 카페 문화도 흥미롭게 관찰했다.

일본 전역에 다니며 카페를 돌아다니며 유쾌하게 살아간다는 만만데 상이란 기인도 만났다. 만만데 다카하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인물은 부산을 열 번도 넘게 다녀왔으며, 선물로 사온 번데기를 주면 일본인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유쾌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가며 카페를 화기애애하게 달궜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임씨의 확신은 이렇게 생겼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커피 이야기, 카페 이야기, 그리고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모아 2007년
『카페 도쿄』(황소자리)
를 썼다. 의외로 호응이 컸다. 2만부 가까이 나갔다. 올해는 『카페 오사카, 도쿄』를 펴냈다. 도쿄에 머물던 당시 친구들과 함께 했던 간사이 지역 카페 탐방의 기록이다.

임씨는 “일본에는 차 문화에 버금가는 개성과 품위 있는 커피 문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카페즈키(カフェ好き)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전통의 맛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가게도 많다. 임씨는 “커피는 대화를 부르고, 카페는 사람을 부른다”며 “내가 만났던 그 고집스러운 커피쟁이들의 혼을 책에 담았다”라고 말했다.

임씨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나 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카페가 어디냐고. “도쿄의 모이, 오사카의 로카리테, 교토의 로쿠요사….” 그의 대답은 결코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