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밭'에 앉아 미소 짓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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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소설가 김승옥씨의 산문집 출간 축하모임에서 김씨와 문우들이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곽광수씨, 시인 최하림씨, 김씨와 부인 백혜욱씨. [안성식 기자]

지난해 2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소설가 김승옥(63)씨가 병상에서 일어나 준비한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작가) 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 문인.지인들과 한자리에

'내가 만난…'은 김씨가 성장 과정과 하나님 체험, 1962년부터 64년까지 서울대 문리대생이 중심이 돼 만들었던 문학동인지 '산문시대' 창간 전후를 밝힌 글 등을 모은 것으로 김씨가 책을 낸 것은 86년 산문집 '싫을 때는 싫다고 하라'를 펴낸 뒤 18년 만이다.

모임에는 곽광수.최하림.김치수씨 등 산문시대 동인들이 찾아와 김씨의 재기를 축하했다. 또 김지하.김주연.김병익.천양희.정과리.정끝별씨 등 문단 동료.후배들과 권영빈 중앙일보 편집인 등이 참석해 덕담을 건넸다.

속속 모임에 나타난 참석자들은 말쑥한 양복 차림에 환한 미소를 짓는 김씨를 확인하고는 애틋하고 흥겨운 인사를 나눴다. 김주연씨는 김씨의 손등을 아플 정도로 두세차례 두드리고는 "이사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정시간보다 두시간쯤 늦게 도착한 김지하씨는 김씨가 또렷한 발음으로 "어서 오시라"고 인사하자 "말 잘하네!"하고 되받았다.

20여년 전 김씨와 함께 보길도에 다녀온 후 처음이라는 시인 천양희씨는 시종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김씨를 지켜보며 "예전 김승옥씨는 가수 남인수의 노래를 남씨보다 잘 불렀다"고 회고했다.

감회를 묻는 기자들에게 김씨는 손짓을 해가며 짧게 답했다.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자 출판사(작가) 손정순 사장이 "오랜만에 책을 냈는데 옛 친구들이 보고 싶어 조촐하게 밥 한끼 하려고 자리를 마련했다는 뜻"이라고 '통역'했다.

참석자들은 돌아가며 김씨와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최하림씨는 "'산문시대' 첫 호에 실렸던 김씨의 작품 '건(乾)'을 읽고는 너무 놀랐다. 문장이 햇빛처럼 반짝이는 감성으로 충만했다. 스스로 글을 못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김승옥씨의 '건'을 읽고 문장공부를 새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 김지하 "力作 또 쓰리라 믿어"

김치수씨는 "전주의 출판사에서 '산문시대'를 찍었기 때문에 방학 때면 동인들이 한달씩 전주에 내려가 하숙을 했는데 김씨는 당시 전주에서 대표작 '무진기행'을 완성했고 글 솜씨만큼이나 빼어난 낭독 솜씨로 우리들에게 '무진기행'을 읽어줬다"고 말했다. '무진기행'에 취한 일행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당시 유행가들을 불렀다고 한다.

김지하씨는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언젠가는 다시 빛나는 작품을 쓰리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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