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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이달의 책] 시신에서 삶을 깨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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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은 역사 이래로 가장 오래 살 가능성을 얻었다. 그에 따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웰빙’은 이제 단순한 시대 흐름을 넘어 각광 받는 산업으로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죽음에 대한 공포 또한 커진 것도 사실이다. 온갖 살육과 페스트와 같은 죽음이 일상처럼 주변에 머물러 있던 중세에도 지금처럼 죽음의 공포가 인간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문헌을 보면, 죽음은 곧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믿음 덕택인지 요즘처럼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종교적인, 따라서 영혼의 차원에 머문 한계는 있다. 그에 반해 종교적 믿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죽음에 관한 많은 과학적 지식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죽음과 자신들의 삶을 분리시켜 왔다. 그 지식은 전문가들만의 관심사항이 되었다. 묘지는 특별한 공간으로 간주되어 삶에서 추방되었다.
메리 로취의 『스티프』는 이처럼 현대인들이 잊고 싶어 하는 죽음을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꺼내어 보여준다. 죽음의 결과물인 시신 자체로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즉 죽음은 형이상학적인 영혼의 차원만이 아니라, 지극히 물질적인 육체의 차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만든다.

메리 로취
미국의 대중과학 작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의 행성’을 연재중이다.

실제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 질문은 장기 이식과 관련된 ‘뇌사(腦死)’ 판정에 있어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현대의학은 뇌가 회복될 가능성 없이 망가지면 아무리 심장이 뛰고 있다 해도 죽음을 선고한다.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장기(臟器)가 타인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영혼은 간에, 심장에, 혹은 뇌에 있다는 많은 추측과 그에 따른 인체 실험을 거쳐야 했다.

그러한 실험을 묵묵히 수행한 주인공들이 바로 이 시신이다. 시신 해부와 부패 등과 관련된 세밀하고도 끔찍하기까지 한 장면 묘사는 그래도 여러 가지 간접 정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항공기의 안전과 관련된 실험에서 이 시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안전을 위한 것과는 반대로 살상을 위한 총기 성능을 실험하는 데에도 이 주인공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니 시신들이 ‘착한’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 이상한 주인공들은 때론 살아 있는 자들에게 치료용, 혹은 식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식인 관습이야 문명의 종류에 따라 비교적 최근까지 존속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서양에서도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인체를 식용 혹은 기타 용도로 활용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게다가 영화 ‘니키타’의 한 장면처럼 시체를 액체 속에 녹여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장묘 문화까지 오면, 서양의 엽기 행각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동양 문화에 대한 약간의 경멸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한의학의 ‘기’에 관련된 서술이나 의서(醫書) 『본초강목』의 몇몇 원시적 처방, 중국의 음식문화와 관련된 서술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곳곳에 배치해 놓은 유머를 징검다리 삼아 껄끄러운 죽음의 물질적 표현인 시신을 독자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끌고나가는 힘이 뛰어나다.

역겨울 수도 있을 시체의 현장 곳곳을 몸소 취재한 열성과 그것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역사를 기술하는 꼼꼼함은 이 책을 시신이라는 죽음을 넘어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 살아 있음에 힘입어 우리는 좀 더 죽음을, 그리고 삶을 이해하게 된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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