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중국發 멜라민 공포에 떨고 있는 아시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호 02면

“아침 일찍 일어나 발암물질 치약으로 양치하고 요오드 함량 과다에 멜라민으로 오염된,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를 마시다. 점심에는 금지된 식용 색소 아미노아조벤젠이 든 계란과 피임약 사료를 먹은 뱀장어, DDT로 씻은 배추로 별미를 먹다. 저녁은 병들어 폐사한 돼지고기 요리를 먹다. 정말 근사한 하루였다.”

한 중국 네티즌이 ‘운 좋은 하루’라는 제목을 붙여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이다. 로이터통신은 20일 “식품 관련 사고에 넌덜머리가 난 중국인이 인터넷에 신랄한 풍자를 올려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며 이 글을 소개했다. 특히 플라스틱 만드는 데 쓰이는 독성 화학물질 멜라민(C3H6N6)이 함유된 분유를 먹고 어린이 4명이 신장계통 이상으로 숨지자 중국인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후진타오 주석이 이날 당정 간부를 향해 “생명 안전에 대한 의식이 마비됐다”고 질타했을 정도다. AP통신엔 서너 살 쯤 된 아기가 인근 농가에서 짠 소젖이 담긴, 자기 몸뚱이 반만 한 플라스틱 통을 두 손으로 받아 드는 사진이 실렸는데 여간 가슴을 치지 않는다.

멜라민은 한국에서도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8일 “올 들어 중국에서 분유나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이 수입되지 않았다”고 발표해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인 19일 “국내 양식장에서 쓰인 물고기 사료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사료로 기른 메기 500t 중 400여t이 이미 출하돼 유통됐다고 한다. 농식품부가 “체외로 빨리 배출되는 만큼 먹어도 크게 유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했지만 이 말에 위안받을 시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근본적 문제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우리의 먹거리가 빠른 속도로 국제화되는 데 있다. 중국·러시아·태국·베트남… 다국적 농수산물이 한국의 식탁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19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중국 유제품에 대해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아시아 전체가 멜라민 공포에 떨고 있다. 같은 날 일본에서는 오타 세이치 농림수산상이 중국에서 수입한 공업용 ‘농약 쌀’이 식용으로 판매된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식품 위기’가 ‘금융 위기’ 못지않은 전염성과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경선이 사라진 국제 식품 무역 체제에서 ‘먹거리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울 때다. 해외나 국내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속히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농수산물뿐 아니라 가공식품과 사료 등도 철저한 검역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배고프면 멜라민 매운탕 먹으면 되고, 간식은 ‘생쥐 머리 새우깡’ 씹으면 되고…”로 이어지는 한국판 ‘운 좋은 하루’를 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