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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大 강단에 선 교수님 블레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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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14면

“옥스퍼드대에 다닐 때 한 남자가 다가와서 묻더군요. ‘자네 날 아나?’ ‘모른다’고 했더니 ‘자네가 지난 6개월 동안 출석했어야 할 과목의 교수일세’라고 하더군요.”

‘제3의 길’을 기치로 1997년부터 10년간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가 미국 예일대의 종교학 교수로 변신했다. 블레어는 19일 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시에 있는 이 대학 작은 강의실(신학대)에서 세미나(수강생 25명)에 참석하고 대형 강당에서 2000여 명의 학생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반항아였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언급하며 ‘총리 블레어’ 이미지를 깨려고 시도했다.

지난해 6월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예일대에서 ‘하우 랜드 명사 객원교수’ 자격으로 ‘종교와 세계화 이니셔티브(Faith and Globalization Initiative)’ 과목을 맡았다. 3년간 한 해 5차례씩 하기로 한 강의 가운데 첫 시간이었다.

블레어는 대학 시절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총리 재직 시엔 종교 문제에 관한 언급을 자제했다. 그는 9·11테러 이후 이슬람 세계를 알기 위해 코란을 공부했고 지난해 영국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지난 5월엔 ‘토니 블레어 종교재단’을 세웠다. 예일대 강의를 맡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동 평화와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러시아·유럽연합(EU)·유엔을 대표한 특사도 맡았다.

이날 강단에 선 ‘교수 블레어’는 ‘정치인 블레어’와 달랐다. 강의에 앞서 예일대 학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 앞에 서는 게 긴장된다”고 말했다. 긴장한 탓인지 특유의 매끄러운 화술을 펼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미나에서 블레어는 미로슬라프 볼프(신학) 교수와 함께 강단에 섰다. 그는 40분의 강의 시간 중 후반 20분을 맡았다. 이 자리에서 블레어는 “종교와 세계화는 21세기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교는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게도, 악한 일을 하게도 한다. 종교 간 대화와 이해를 증진시켜 반목의 역사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일대 울시 홀에서 열린 ‘블레어와의 대화’ 행사에서 그는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과 역사학자 폴 케네디 교수, 학생 대표와 한 시간 동안 토론대에 나란히 앉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종교 문제보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추궁성 질문을 많이 했다. ‘잘못된 정보에 의존해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적극 동조했는데 이를 후회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은 무슬림의 적인 극단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늪에 빠진 이라크·아프간 전쟁 상황과 관련해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싸움”이라며 “철저히 해 내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한 여학생은 “그는 매력적이었지만 설득력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블레어가 예일대 교내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정작 학생들과 만난 시간은 90분가량이었다.‘블레어 종교 재단’에 이미 20만 달러를 기부한 예일대 측이 그에게 강연료를 얼마나 지급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블레어의 장남 유안이 올해 초 예일대를 졸업한 인연으로 ‘실비 강연료’만 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블레어가 퇴임 후 맡은 직(職)은 알려진 것만 5~6개에 이른다. 블레어는 중동 특사와 르완다 정부 고문을 맡으며 중동 평화와 아프리카 기아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공익적 성격 외에 세계적 투자은행(JP모건)과 스위스 보험회사의 자문 역도 맡고 있다. 강연료 등을 합쳐 연 수입이 100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신들은 블레어가 퇴임 후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거액을 벌어들인다는 측면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를 비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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