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문화체험>山寺수련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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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반인을 위한 1주일 정도의 산사 여름 수련회가 그 어느 해보다 인기를 끌어 여름휴가 방법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지난달 29일 해인사를 시작으로 송광사.통도사.대둔사.직지사.월정사등에서 열리고 있는 수련회에는 사찰마다 수용인 원을 훨씬 넘어서는 사람들이 몰려 사찰측이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풍경까지 보이고 있다.송광사의 경우 예상인원 6백명보다 세배 가까운1천5백여명이 신청서를 낸 이같은 수련회 바람에 대해 불교계는『유명 관광지에서의 여름휴가가 오히 려 짜증만 안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산사의 분위기와 엄격한 수련과정이독특한 청량감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편집자註] 소는 그곳에도 없었다.그러나 그곳에는 소보다 더그 어떤 곳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눈맑은 스님네들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의 「일상」이라는 틀 속에서는 어떤 새로운 변화를추구할 필요가 없었다.그 도도한 일상의 흐름에 자신을 떠맡긴채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둥둥 떠다니기만하면 됐으니까. 때되면 일어나 밥먹고,지하철타고 출근해 컴퓨터가 뱉아주는 정보를 가지고 늘상 같은 사람들과 떠들다가,또 시간이 되면 퇴근해 그 사람들과 술 한잔하고 주절거리다가 피곤하면 각자 제 껍질 속으로 잠깐 눈붙이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무기력한 사람,사람들.
지난 봄 우연히 바람부는대로 부유(浮遊)하던 민들레 꽃씨가 여의도 광장 한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까만 아스팔트 틈새에서 한송이 노란꽃을 피워낸 강인한 생명력을 만난 적이 있었다.까만 아스팔트와 민들레의 이 인연.그 순간 불현듯 떠오 르는 상념과회한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나는 누구인가」「왜 이렇게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등,그 옛날 사춘기때 젊은 패기로 수많은 밤을 지새운지 실로 얼마만에 잡아보는 명제던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그래 이번 여름휴가는 휴가가 아니라 출가다!내 마음자리-꽃 피울 자리-찾으러.두드려라,열릴 것이다.해서 원(願)세워 헤매다 찾은 곳이 반도끝 해남 대흥사.말없이 웃으시며 산문(山門)열어주신 대둔사 큰스님,따뜻한 손내어 잡아주신 지수(智首)스님,스님들.
그 세상은 그저 설렁설렁 지나가는 산아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사는 사람들의 눈빛이 다르고,목소리가 다르고 기품이 있었다. 속가(俗家)에서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잿빛 승복을 걸치니저절로 두손이 모아지고 눈물이 반짝인다.이것이 참회라는 건가.
출가 첫쨋날부터 완전히 봉해지는 입(默言),자신을 최대로 낮추는 절(五體投地),어느 의식보다도 까다로운 발우공양,심지어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사고(思考)까지 절제해야 하는 습의(習儀)를 받았다.강의하는 지도 법사들의 단아한 용모, 그러나 대쪽같은 목소리는 속세에 찌든 내마음을 때리는 죽비 소리만큼이나 울림이 크다.
오전3시.똑 똑 똑 또르르.
잠결에 들리는 희미한 목탁 소리에 속기(俗氣)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곤한 육신을 추스려 새벽 예불에 참석했다.「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니다」로 시작하는 예불문의 장중한 합송에 쏟아지는 새벽 하늘의 별빛처럼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가 누리에퍼지는듯하다.
예불에 이어 본래의 마음자리-소(牛)를 찾으러(尋牛) 「스승을 만나며 스승을 죽이고,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칼날의 세계 좌선으로 들어간다.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오로지 「이 몸이 무엇인가」만이 존재한다.
우리 35명의 도반들에게 있어 이 짧은 4박5일의 출가는 자아를 상실한 이 시대의 물결에서 잠시 빠져나와 자기의 목소리를다시 찾고 별빛을 우러르며 진정한 공동체의식을 가질 수 있는 자리였다.
비록 진정한 소는 못찾았지만 소의 그림자라도 잡으려고 정진했고 마음자리 고운 길동무를 만나는 인연과 깊고 맑은 눈으로 밝은 세계를 밝혀주신 스님들과 함께 되는 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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