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소설 많이 읽혀 문단 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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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여름 휴가철들어 본격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은 옛말이 된지 오래.학업과 일상업무에 쫓겨 못읽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방학과 휴가가 있는 7,8월은 독서의 성수기다.출판사들은 이 대목을 겨냥,기획 출판물들을 쏟아놓는다.
올 여름 독서시장에서는 예년과 달리 대중소설류가 아닌 본격작가의 본격소설들이 국내소설은 물론 독서시장 전체를 이끌고 있다.또 때마침 새로운 본격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되며 호조를 보이고있어 90년대 들어 침체된 문단을 고무시키고 있 다.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의 지난주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이청준씨의 『축제』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천지간』이 국내소설부문1,2위에 올라 있다.
또 홍상화씨의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조세희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오정희씨의 『새』,은희경씨의 『새의 선물』,김이소씨의 『거울 보는 여자』,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곰 이야기』등이 10위안에 올라 있다.『축제』와 『천지간』은 종합부문에서도 교보문고에서는 1,4위,종로서적에서는 2,5위를차지하고 있어 본격작가의 작품이 올 독서계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올 여름 독서시장을 휘어잡으려는 야심찬 기획으로 속속 출간된 10여종의 남북통일.남북가상전쟁을 다룬 대중소설류는 한권도 순위권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90년대 들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등의 대중소설을 수백만부씩 읽던 독서시장이 본격소설로의 회귀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경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78년 출간된 이 작품은 꽉 짜인 구성과 시적.우화적 문체,그리고 산업사회의 소외계층을 다룬 주제의식으로 우리시대 고전으로 꼽히며 적지만 한달 2천~3천부씩 꾸준히 팔 려왔다.
이 작품이 올여름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본격소설로 독자가 돌아오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또 시드니 셀던.존 그리샴등의 흥미본위의 외국소설들이 베스트셀러에서 수그러들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 다.
교보문고의 매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회(金永會)영업1부 차장은 『부진을 면치 못하던 소설판매가 올 여름 들어 20%이상 늘며 도서판매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수능시험에 대비하는 학생층이 부쩍 본격소설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
이와함께 『지난해부터 줄곧 소설시장을 주도했던 양귀자씨의 베스트셀러 「천년의 사랑」의 영향으로 일반독자들도 이제 본격작가의 작품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는게 金씨의 분석이다.
한편 김영현.김소진.박일문.박명희.공선옥.전경린씨등 중견.신인작가들도 최근 잇따라 소설을 펴내며 베스트셀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90년대 선두작가로 꼽히는 김소진씨의 장편『양파』(세계사刊)는 70년대 후반 격동기를 대학생으로 겪어낸 오늘의 40대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양파껍질처럼 벗겨버리고 싶은 그 시대와개인적 상처도 이제는 귀한 삶의 편린들로 받아들 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공선옥씨의 장편『시절들』(문예마당刊)역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열린 80년대 암흑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오늘의 이야기로 소위「후일담」소설이다.이에 반해 운동권출신 작가 김영현씨의 『짜라투스트라의 사랑-연적』(문학동네刊)은 시소설이라 는 형식으로 낭만과 허무,인간의 실존문제등을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金씨는 이제 현장소설.후일담소설등 운동권의 무거운 도덕적 책무감에서 벗어나 문학 자체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고 있는듯한 작품이다.
이념의 시대가 걷힌 90년대의 황량하고 황당한 젊음을 다룬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9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박일문씨의 『장미와 자는 법』(문학수첩刊)은 일종의 성장소설로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담 고 있다.
8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박명희씨의 첫 창작집 『안개등』(세계사刊)은 페미니즘 운운하며 왜곡된 여성상의 본질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으며 전경린씨의 첫 창작집 『염소를 모는 여자』는 일상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끝없이 야생적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의 「불온한 정열」을 묘파해내고 있다.
이와같이 올 여름 다양한 주제의 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돼 독자들의 시선을 끌며 오랜만에 본격소설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꾀하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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