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걸작전'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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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구겐하임미술관 걸작전」(10월3일까지)에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개막일부터 미술을 애호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중.고생들도 많이 눈에띈다.흥미롭게도 필자가 전시를 관람하던 날에는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스무명 남짓한 어린 꼬마들이 줄지어 전시장을 찾았다.현대미술을 감상하겠다고 선생님을 따라 나선 어린이들의 모습이 귀엽고 대견했지만 과연 어디까지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이렇듯 폭넓은 관람객들이 전시회를 찾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전이기 때문이다.
우선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중.고교 미술교과서에 자주 등장해 익히 알고 있는 세잔.고흐.쇠라등 19세기말 화가들과 마티스.피카소.뒤샹.샤갈.칸딘스키.미로.폴록등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기라성 같은 미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
관람객들은 이들의 이름만 듣고도 이미 이 전시회가 쉽사리 만날 수 없는 걸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현대미술을 난해하다거나 자신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느끼기 쉬운 이들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미술관속으로 이끌고 있다는점에서 이번 전시의 1차적 의의를 짚어보고 싶다.대중이 중요한문화소비자로 부상한 현대사회에서 미술관의 역할 은 단순히 미술작품을 보존,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다.소수가 아닌 모든 이를 위한,일방적이 아닌 상호교감적인 행사가 이뤄지는 공동의 장이 돼야 한다.아울러 훌륭한 문화교육 공간 역할도 해내야 한다.이 점에서 이번 전시는 느낌이 좋았다.
전시회에는 총 58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물론 거장들의 작품이라고 모두 걸작이 될 수는 없겠지만 조형적으로 감동을 주거나 미술사적으로 연구해볼만한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어 반가웠다. 한 작가나 한 미술동향을 소개하는 기획전에 비해 한 미술관의 소장작품전은 주제와 양식이 통일되지 않은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기 때문에 미술사적 지식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따라서 관람객 들은 개별작가나 작품에 관한 세부사항보다 양식적으로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전체적으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느껴보는 것이 부담도 없고 즐거운 마음이 들 것이다.관람객의 이해를돕기 위한 호암갤러리측의 세심한 배려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점도 특기할만하다.우선 각 전시실 벽면에 쓰여진 미술동향이나 작가에 관한 설명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작품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무료로 배포되는 안내책자나 「서양현대미술의 흐름」에 관한비디오 상영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감상방법이다.
갤러리 입구의 대표적인 작품설명을 담은 15장의 엽서는 참고용뿐 아니라 소장하기에도 깔끔해 재미있는 착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화여대.미술사학〉 오진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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