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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미국, ‘잃어버린 10년’ 일본 전철 밟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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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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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주식 버블 붕괴→금융회사 연쇄 도산→금융시장 불안→경기 침체. 1990년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그렇게 찾아왔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터지면서 금융회사들이 연쇄 도산했다. 은행들은 대출창구를 닫았고, 돈을 빌리지 못한 기업들은 잇따라 쓰러졌다. 이런 악순환은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

2008년 미국은 어떤가. 지금까지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부동산 경기나 금융 부실 문제가 일본과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말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이라는 기사에서 일본과 미국의 자산 버블을 비교하고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이 많다고 분석했다. 리처드 쿠 노무라총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칼럼을 통해 “자금 수요가 약해진 때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금융위기는 일본의 경험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도 “두 나라에서 자산 버블과 금융 불안이 일어나는 양상이 매우 비슷하다”며 “미국도 심한 후유증을 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초동 대응이 늦었다. 금융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과감한 대응책을 내놔야 했지만 구조조정을 미적거리다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풀고 금리를 0%로 낮췄는데도 오히려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경기 회복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뒤늦게 이를 해결한 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다.

반면 미국은 일본에 비해 신속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게 결정적인 차이다. 베어스턴스, 프레디맥과 페니메이, 그리고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이 그렇다. 또 세계 각국이 미국과 정책적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각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리를 인하하고, 자금시장에 거액을 풀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을 때는 다른 나라의 정책적 도움이 없었다. 일본의 금융위기는 국내 문제였지만 미국의 위기는 국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작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같은 위기지만 대처 방식이 다르다”며 “일본은 질질 끌다 화를 키웠지만 미국은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후식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부국장도 “미국과 일본의 근본적 차이는 대응의 스피드에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호송선단식 행정의 잔재가 남아 있는 데다, 정치권의 이해가 얽혀 부실 정리를 서두르지 못했지만 미국은 그때그때 원칙을 세워 신속히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실패를 지켜본 미국의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17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금융당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오래전부터 일본의 정책적 실패 사례를 연구해 왔다고 보도했다. 특히 공적자금의 투입 규모와 시기, 부실 경영의 책임 추궁 범위, 부실 자산의 매각, 금리정책의 효과 등이 연구 대상이었다.

존 메이킨 미국기업연구소(AE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AEI 홈페이지에 띄운 보고서에서 “미국이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가정은 근거 없다”며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디플레의 위험을 잘 알고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기업들은 은행에 너무 기대는 바람에 금융 불안에 직격탄을 맞았고 ▶일본 정부는 재정을 비생산적인 분야에 쏟아부어 부양효과를 떨어뜨렸으며 ▶경기침체기에 소비세를 올려 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을 실패 사례로 들었다. 미국은 이 같은 전례를 잘 연구하고 있으므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관심은 미국 경제의 침체가 어느 정도나 이어지느냐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위기의 충격은 워낙 크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실물경제에 대한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일본에 비해 훨씬 짧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이우광 연구원은 “미국이 회복되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 다. AEI의 메이킨도 미국 경제가 정상궤도에 들어서는 시기를 2009년 말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저축률이 낮다는 게 문제다. 일본과 달리 개인 소비의 완충지대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 부실→실업률 상승→소비 위축→기업 수익 악화’의 악순환이 빨리 일어날 위험이 있다.

남윤호 기자 , 그래픽=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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