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리포트>평화.변영 '미국의 꿈'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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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매우 무미건조한 고층빌딩 숲속에서 수많은 노점상과 지구촌에서몰려든 인파가 올림픽 1백주년을 기념하는 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폭염이 쏟아지는 거리에는 「올림픽 모드」라는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들이 제 나름대로 20세기 마지막 스포츠 축제에 참가했다는 기쁨으로 들떠있는 표정들이다.경기장이든,올림픽공원과 「인터내셔널대로」든,이 올림픽도시를 가득 메운 지구촌 사람들은1만1천여 선수들이 금메달의 꿈을 향해 질주하듯이 하나의 꿈-인류의 이상-을 품고 21세기의 세계로 달려가는 것 같다.
인류를 한마당에 모아 「상호이해와 우애」로 세계평화를 다진다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꿈이 애틀랜타에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올림픽공원의 쿠베르탱남작 동상앞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스포츠의 세계처 럼 현실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벨기에의 한 가족이 말했다.바르셀로나 올림픽때보다 26개국이나 더 참가한 애틀랜타 올림픽은 유엔회원국보다도 참가국수가 더 많다.얼마 전만해도 2차대전 후 가장 「야만적 시민전쟁」을 치렀던 보스니아공화국까지도 처음으로 출전했다.
『우리에게 전쟁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촌 모든 나라와 함께 참가하는데 있다』라고 파리포비치 조직위사무총장은 설명했다.
참가하는데 큰 의미를 부여한 쿠베르탱의 올림픽정신이 현실속에 구현된 사실을 증명한 말이다.보스니아의 숙적이었던 세르비아공화국(옛유고)도 3~4개의 메달획득을 꿈꾸며 참가했다.국제사회의천덕꾸러기처럼 취급받는 리비아도 4명의 육상선수등 6명을 출전시켰다.유엔의 군사.경제적 봉쇄조치에 신음하는 리비아의 참가는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막강한 외교적 영향을 상징한다.중동평화의 시한폭탄인 팔레스타인의 참가는 한때 이스라엘의 거부소동을 빚었다.가자지역출신인 팔레스타인선수 3명의 참가에 대해 이스라엘이 공식 거부하는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이스라엘의 요구는IOC에 의해 일축 되었다.
북한선수단의 참가는 애틀랜타 올림픽의 세계통합실현을 상징하는사건으로 평가된다.이번 올림픽은 탈냉전이후 유일초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외교적 꿈」이 크게 기여했다.보스니아와 중동에 평화를 가져온 것은-아직 앞날을 장담하기에는 이르 지만- 미국 외교의 작품이었다.또한 2년전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이번에 북한의 참가도 불투명했을 것이다.아마도 IOC와 구미 강대국의 외교가 상호보완하고 조화를 이루어 전회원국의 참여를 이끌어낸데 애틀랜타 올 림픽의 큰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바로 여기에 개막식에서 인류에 깊은 감동과 환희를 안겨준 셀린 디온의 노래 「드림의 힘」이 있는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이루어진것 같지 않다.기념품들을 팔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노점상들의 표정에는 삶의 고달픔이 배어 있다.
미국자본주의의 막강한 힘의 표상인 애틀랜타의 화려한 고층빌딩숲 주변에는 가난에 찌든 빈민촌이 널려 있었다.『이 도시의 남부지역이 모두 빈민구역으로 오늘날 미국의 문제』라고 지적한 국제사면위의 한 보고서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맹점을 읽게 된다.인류의 목마름을 풀어주는 이곳 최대의 재벌 코카콜라의 유리건물밑에는 미국 보통시민들의 삶의 갈증이 있다.
주섭일 본사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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