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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미술의 힘] "내 붓은 화약” … 폭파 흔적으로 드로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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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올해 세계 미술계의 화두는 아시아다. 중국·인도 출신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경제 성장으로 이곳 미술시장은 이머징 마켓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중국·인도·러시아와 중동의 신흥 부자들이 세계 경제의 어려운 상황에도 미술품을 사들이는 중이다. 이곳 미술가들 역시 자국의 문화적 배경이 녹아들어간 작품으로 세계 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가 비슷하게 근대화와 서구화, 전통의 충돌 과정을 거쳤기에 이들의 작품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거울이다. 최근 10년 새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이들도 있어 작가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있다. 중앙일보는 창간 43주년을 맞아 아시아의 대표 작가들을 연속 인터뷰했다. 첫 번째 주자는 올 초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중국인 최초로 회고전을 열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각특수예술 총감독으로 활약한 차이궈창(蔡國强·51)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나선 공간을 추락하는 9대의 자동차로 채운 설치 ‘불운: 제1장’(2004). [구겐하임미술관 제공]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올여름 세계적 이슈였다면, 그와 관련해 미술인 중 가장 주목받은 이는 바로 차이궈창이었다. 올림픽 시각특수예술 총감독으로 선정돼 장이머우(張藝謀) 총감독이 지휘한 개·폐막식의 특수효과를 담당, 행사의 예술적 경지를 끌어올렸다. 그는 올 2∼5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중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올림픽 기간인 8∼9월 베이징 중국미술관을 거쳐, 내년에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옮겨간다. 올해가 그의 해인 이유다.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 차이궈창의 회고전 ‘나는 믿고 싶다’의 마지막날이었다. 오전부터 관람객이 몰렸다. 주인공 차이궈창이 나타나자 군중은 이내 그를 둘러싸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치켜들었다. 대체 어떤 미술인에게 대중이 이처럼 호의를 보일까. 그는 스타였다. 카메라 공세는 인터뷰를 위해 미술관 내 찻집으로 옮겨간 뒤에도 계속됐다.

그는 “올림픽 개·폐막식 후 바로 장애인 올림픽이 이어져 여전히 주경기장 내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고향은 푸젠성 취안저우(泉州), 아버지는 서예가였다.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 분위기에 반항하던 그는 상하이희극학원에 진학,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1986년 중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했다.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첫 중국관 전시를 기획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활약해 온 그가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 운영자 모집에 지원한 이유는 “베이징 올림픽의 예술적 격을 높여 국제적이고 현대적인 행사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경쟁률은 400대 1 정도, 리안 감독도 떨어졌다. 장이머우는 총감독에 선정됐고, 미술부문 총괄 업무에 지원한 나는 시각특수예술 총감독으로 뽑혔다”고 들려줬다.

개막식은 성공적이었지만 불꽃놀이의 일부인 ‘거인의 발자국’은 사진 조작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말이 많아졌다. “개막식 당일 현장에서 수십만 명이 똑똑히 봤다. 하늘에 29회 올림픽을 기념하는 29개의 발자국이 찍혔다. 단 1분이었지만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3년이 걸렸고, 600명이 참여했다. 한순간 벌어지는 일인 데다 헬기 촬영이 위험한 상황이라 미리 준비해 둔 언론용 CG 영상이 시빗거리가 됐다.”

# “화약은 예측 불가의 매체”

이번 올림픽 개·폐막식은 화약 드로잉과 폭파 퍼포먼스 등 그의 일관된 예술 행보의 정점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장중한 설치 이전에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화약 드로잉 시리즈다. 종이에 먹 대신 화약 폭파의 흔적을 남겨 수묵화의 느낌을 낸다. 먼저 종이에 일정한 모양으로 화약을 깔고 불을 붙여 폭파시킨다. 불꽃과 연기가 어느 정도 일어나면 재빨리 천을 덮어 불을 끈다. 중국의 대표 발명품을 이용해 폭파 퍼포먼스를 한 뒤 수묵화 닮은 드로잉을 남기는 방식이다.

큰 종이에 화약 폭파의 흔적이 용처럼 지나간 대표작 ‘화약 드로잉’ 시리즈들. [구겐하임미술관 제공]

그는 “화약은 자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통제할 수 없는 매체다. 사랑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스펙터클과 엔터테인먼트, 격렬한 폭발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승화, 화약 드로잉은 이 모든 것이다. 이쯤 되는 예술가는 독을 막으려 다른 독을 쓰는 한방 의사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장 파괴력이 큰 화약과 가장 잘 타는 종이가 만난 게 재미있지 않으냐”며 “내 고향에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마을 행사에서는 항상 불꽃놀이를 벌였다. 화약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리는 마을의 울음꾼이었다. 영어로는 ‘건파우더(gunpowder)’라고 하지만 한자로는 ‘불(火)’과 ‘약(藥)’이다. 치유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미술관 근처 자택에서 이어졌다. 후퉁(胡同·골목)으로 접어들어 겹겹의 대문 속에 숨어 있는 중국의 전통가옥인 쓰허위안(四合院)이다. ‘ㅁ’자형으로 가운데 마당을 두고 본채와 사랑채 등 4개 건물이 둘러싼 구조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는 2년 전 베이징 올림픽 준비를 위해 이 집을 마련했다. 내부는 단순하고 모던하게 꾸며져 있었다.

#“중국 미술 신드롬은 중국 시장 덕분”

그의 작품은 미술관뿐 아니라 미술시장에서도 인기다.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화약 드로잉 14점 세트는 7424만 홍콩달러(약 96억원)에 팔려 중국 현대미술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난 5월 쩡판쯔의 유화 ‘가면시리즈 6번’(약 101억원)으로 반년 만에 깨졌다. 그만큼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중국 작가들의 독주가 거세다. 그는 거리를 뒀다.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 작품이 가장 비싸다고들 하니 싫기야 하겠나. 하나 미술시장에서 잘나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 미술 신드롬은 중국 시장 덕분이다. 비싸게 팔렸다는 기사는 많이 나오지만 예술성과 작품성 자체로 높이 평가받는 경우가 드믄 게 그 예다.”

2년 남짓 준비한 올림픽이 17일 장애인 올림픽 폐막으로 막을 내렸다. 그는 활동 무대인 뉴욕으로 돌아가 일본 히로시마,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등 예정된 개인전 일정을 소화한다.

“올림픽은 큰 배였다. 나는 이제 다시 나 자신이라는 작은 배를 타고 곳곳을 다니며 하던 작업과 프로젝트를 계속할 생각이다. 한국에는 13년 전 호암미술관에서 연 그룹전에 참여한 게 전부다. 전 세계를 항해하는 이 작은 배가 언젠가 한국에도 들를 수 있다면 좋겠다.”  

베이징=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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