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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칼럼>기회주의와 密敎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얼마전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 전직대통령의 재판에서 全씨측 변호사들은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 몇몇 군출신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매도했다.기실 그들중에는 5공(共)때 장관도 지내며 특권을 누려 모두 신군부와 한패로 생각됐던 사람들도 있었다.그들이 이제 신군부의 행위를 「명백한 군사반란」으로 규정하면서 과거 그들의 동료들을 몰아세우는 편에 섰으니 그런 말이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증인들의 말은 전혀 다르다.그때는 세부득이해 비록 그들 밑에서 일했지만 그날부터 모든 기록을 해뒀었노라고 했다.사실이 그러하다면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비록 장관을 하고,특혜를누리면서도 바늘방석에 앉은듯 마음의 갈등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입을 봉쇄당한채,손발을 묶인채,군부의 강압적 통치아래서 연명하지 않으면 안됐던 쓰라린 기억들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그런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全씨를 변호하고 두둔하 는 무리들은 무슨 충의파(忠義派)라도 된단 말인가.
全.盧씨의 역사적인 범죄는 명백하다.그들은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했다.권력을 빼앗은 의도 역시 아무런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못하며 단순히 군부의,아니 全씨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집단의 권력장악을 연 장하려 한데지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그들에 대한 재판은 그런 행위를 법적으로 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지, 그들의 역사적 과오 자체를 재해석하는 것은 아니다.그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이미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단죄하면 마치 헌정질서가 중단되고 현재의 법적인 기초가 무너진다고 변호사들은 주장한다.이런 해괴한 법리도 법적인 다툼의 과정에서 나온 논리로 넘어갈 수는 있다.그런데 마치 그들의 역사적 과오 자체를 옹호하듯 지연전술 을 쓰고재판을 거부하는등 법정투쟁을 벌이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역사의식이 완전히 결여된 탓으로 생각된다.『돈을 바치니 기업이 잘되더라』,『강권통치를 하니 나라가 잘 돌아가더라』는 식의 어거지 주장을 당연한듯 변호하고 5공이 한 국의 사회발전에 기여나한듯이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법적인 상황을 이만저만 혼동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까지도 흔히 있는 동양적 온정주의(溫情主義)라고 보아넘길 수도 있다.문제는 그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희화화(戱畵化)하려는 분위기가 사회의 일부 상층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눈이 두려워 겉으로는 떳떳하게 꺼내지 못하지만 全씨가돈쓰는데 손이 컸다느니,법정태도가 당당하다느니 하는 식의 말들을 은근히 돌린다.全씨를 보스로 모시는 군출신 하나회의 멤버뿐아니라 5공 아래서 덕을 보고,그 아래서 권력 의 비호를 받아세력을 신장하고,그 아래서 부패의 맛을 함께 나눈 자들이 그런음모적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全씨등은 권력을 이용해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수천억원의 돈을 모았고,퇴임후에도 수천억원을 남겨 갖고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그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개인적 축재며,국민재산의 수탈이다.그런 자금들이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는 데,그들의 한패거리를 끌어모으는데 동원됐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그것이이제 하나의 밀교적(密敎的)집단을 형성한 것 같다.그들은 때로는 「보수」라는 이름으로,때로는 「우익」이라는 이름으로 군부통치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全씨등을 비호한다.그들은 부패와 반(反)역사성의 공범들이다.
바로 이런 세력들이 새로운 개혁에 대한 역작용의 바람을 일으키고 민족문화에 대한 반문화적 흐름을 조장하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반역사적 밀교주의가 확장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안된다.그것은 단순히 지난날의 군부통치 망령을 되살려서는안된다는 반성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변화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 하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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