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산책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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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 좀 촌스럽게 보이나요? 주로 밖에서 활동하다보니 많이들 까맣죠? 그런데 애들은 이렇게 커야하지 않을까요?”
허리춤에 만보기를 꿰차고 유치원생 아이들과 함께 산책에 나선 부산대학교부설 어린이집의 하정연 원장은 구수한 부산 억양을 구사하며 크게 웃어보였다. 산책 내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세례에도 한결같은 표정이었다. 부산대학교부설 어린이집은 생태유아교육을 지향하는 유치원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책이다.
1995년 3월 국공립보육시설로 개원해 14년째 운영 중인 부산대부설 어린이집에서는 현재 197명의 아이들과, 24명의 교직원, 12명의 보조교사가 생활하고 있다. 규모가 조금 큰 유치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생태유아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 원장은 아이들의 거의 모든 놀이를 자연친화적으로 진행한다.
“우리 어린이집은 개원한 첫 해부터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아이들과 함께 산책에 나섰습니다.”

하 원장이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산책이 아이들의 본성을 살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소아비만이나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앓는 이유를 하 원장은 “걷고 뛰어 놀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아교육기관에서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유치원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하 원장의 지론이다.
산책 프로그램은 ‘흐르는 산책’과 ‘머무는 산책’으로 나눠 진행한다. ‘흐르는 산책’을 할 때면, 유치원을 출발해서 가까운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동네 골목, 놀이터, 시장, 초등학교 운동장, 박물관 등은 아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산책로가 된다. ‘머무는 산책’은 아이들이나 교사가 일정한 목적지를 정해서 길을 나선다. 가을이 오면 계절에 맞추어 낙엽이 좋은 곳을 찾아 산책을 하기도 한다. 가끔 지하철을 타고 5일장에 다녀오기도 한다. 산책을 다녀온 뒤에는 아이들과 함께 지도를 그려 학습효과를 높인다.
산책 효과는 괄목할 만하다. 기본적으로 활동성과 사회성을 갖추게 된다.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안전 규칙을 익히고, 협동심을 갖게” 되며, “편식을 피하고 숙면을 취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 원장은 전한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릴레이 선수로 선발되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우려 섞인 학부모들의 시선도 호의적으로 변했다. 처음에만 해도 산성비와 자외선을 걱정하던 학부모들이 이제는 산책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하 원장은 아이들의 산책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여러 유아교육 기관들과 각 가정에서 산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둘째는 아이들이 걷기에 안전한 도로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이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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