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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뛰는방송인>1.오현창 PD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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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위성방송.멀티미디어.인터네트.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첨단시대를맞아 방송계도 변하고 있다.그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추구하며 21세기를 준비하는 프로듀서.작가등 젊은 방송인들을 찾아 그들의 얘기를 통해 우리 방송계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편집자註] 삼각관계.불륜.코믹.
요즘 드라마들이 쳇바퀴 돌듯 맴돌고 있는 세 꼭지점이다.그래서 이 꼭지점에서 약간만 벗어나면 사람들은 『신선하다』『감동적이다』는 평을 보낸다.
MBC-TV 베스트극장 『달수』시리즈의 오현창(36)PD에게거는 기대도 드라마의 사각.오각을 보여주려는 그의 노력과 무관치 않다.
평범한 은행대리 강달수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삶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달수』시리즈엔 그 삼각틀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있다. 어눌하지만 사람 좋은 미소를 지닌 달수를 보면서 우리 가슴은 훈훈해지고,불의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에 같이 흥분하면서도,거대한 힘 앞에서 결국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는 뒷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달수는 저의 분신이자 우리 시대의 자화상입니다.그를 통해 소시민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버거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제도나 관습,또는 문화,그중에서 특히 일반인들이 바꾸기엔 역부족인 「벽」같은 것 말입니다.』 법과 재판의 맹점을 꼬집은 『달수의 재판』(95년 6월9일 방송)을 시작으로 집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공사 비리를 묘사한 『달수의 집짓기』(95년 11월24일),학교 촌지문제를 정면에서 해부한 『달수 아들학교 가다』(96 년 5월3일),교통문화를 다룬 『달수의 차.
차.차』(96년 7월5일)에 이르기까지 네편의 연작은 시사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는 부조리를 다루는 딱딱하고 우울한 얘기에 재미와 실감을 집어넣기 위해 엄청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털어놓는다.매번 다른 작가와 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만큼 뒷얘기도 적지않다.한예로 학교촌지문제를 다루면서는 실제 초등학생인 아들이 눈에 어른거려 달수아들 영민이가 몇학년몇반에 다니는지 결정하는데 며칠이 걸렸다고.주인공 강남길씨와 임예진씨는 오PD의 이런 고민을 가장 가까이서 하는 사람들중 하나다. 『강남길씨는 제가 생각한 달수의 바로 그 모습입니다.
실실 웃다가도 「에이 씨,이런 법이 어딨어」하고 눈을 부라리는어수룩한 원칙주의자죠.그는 우리 시대의 중간층입니다.30대 중반이라는 것은 기성세대도 아닌,신세대도 아닌 어중간한 세대지요.그래서 그의 이런 태도는 사람들의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달수』시리즈가 「인류학적 보고서」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소액 재판.건축 비리.촌지.교통문화등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인하대 산업공학과 출신인 오PD는 84년1월 MBC공채 16기로 입사,경력 13년의 중견으로 『드라마엔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드라마 예찬론자.90년 박상민.변우민 주연의『서울 시나위』로 첫 연출을 맡은뒤 단막극 『나 의 어머니』『한지붕 세가족』등을 연출했다.
그는 드라마의 생명은 사회흐름에 맞추는데 있다고 생각한다.그래야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얻어내고 공감대를 얻을수 있다는 것.영화는 시간이 가도 비슷한 감동을 줄 수 있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30대 봉급생활자들의 애환을 그린『마누라 지갑털기』나부부간의 성문제를 다룬 『섹스 모자이크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사회단면을 진솔하게 담고자하는 그의 드라마관이 배어나온다.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요.다만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죠』라고 말하는 오PD는 정부의 무신경한 복지정책은 개선돼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고위 관리나 국회의원들도많이 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가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하는게 중요한게아니라 잘해야 한다』『3년안에 자기 색깔을 가져라』『따뜻한 가슴을 가져라』『반걸음만 앞서 가라』.
고석만.장수봉.김종학.황인뢰 같은 선배들처럼 독특한 자기 색을 가지고 최고를 추구하면 「된다」는 조언은 바로 그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달수 시리즈」를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달수와 은숙이 늙어가고 영민이가 크면서 겪는 일들을 촘촘히 엮어 내보고 싶습니다.물론 주인공은 강남길씨와 임예진씨죠.한 배우를 통해 우리 삶의 여정을 담아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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